1980년 '합수부 동향 진술서' 놓고 심재철-유시민 엇갈린 주장

정당/국회 / 이영란 기자 / 2019-04-23 12: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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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77명 민주화 인사 겨눈 칼 돼" ... 유 "진술서 썼지만 대수롭지 않아"

[시민일보=이영란 기자]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22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향해 역사적 진실을 예능으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질책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 이사장이 1980년 합수부에서 동향 진술서를 쓴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대수롭지 않은 내용이라고 강조한 데 대해 날을 세운 것이다.

유시민 이사장은 앞서 KBS 2TV '대화의 희열'에서 "누구를 붙잡는데 필요한 정보 이런 것은 노출 안 시키고 우리 학생회 말고 다른 비밀조직은 노출 안 시키면서 모든 일이 학생회 차원에서 이루어진 걸로(진술했다)"며 "진술서 용지에 하루에 100장 쓴 적이 있어요. 안 맞으려고. 어떻게든 늘려야 되잖아, 분량을"이라면서 대수롭지 않은 '진술서'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심재철 의원이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유 이사장의 주장은 상당부분 사실이 아니다.

심재철 의원은 "(유 이사장이)1980년 합수부에서 쓴 A4 용지 90쪽 분량의 상세한 운동권 내부 동향 자백진술서는 사실상 그가 진술서에서 언급한 77명의 민주화 운동 인사를 겨눈 칼이 되었고, 그 중 3명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공동피의자 24인에 포함되는 등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핵심 증거로 활용되었다"며 "유시민은 군검찰에 임의진술 형식으로 참고인 진술조서를 작성한 뒤 불기소로 풀려났지만 검찰관이 작성한 그의 참고인 진술조서는 공소유지를 위한 검찰의 핵심 증거로 재판부에 제출되었고 유시민의 진술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에서 증거의 요지로 판시되었다"고 지적했다.

심 의원은 "자신이 체포되기 3주 전인 1980년 6월 11일과 12일자로 최종 정리된 유시민의 합수부 제출 자필 진술서(001168-001257쪽)에는 77명의 이름이 구체적인 행동과 함께 적시되었다"면서 "곧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서울지역 학생회장단 22명, 총장 등 서울대 보직교수 6명, 서울대 학생운동권 40명의 행적, 민청협(신군부가 김대중 산하단체로 기소함) 회장 이해찬 등 복학생 8명, 해직언론인 1명의 이름이 혐의내용과 함께 상세하게 기술되었고 결국 당사자에게는 또 다른 칼로 겨눠지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유시민의 진술서는 1980년 2월부터 5월까지 서울대 핵심 운동권의 동향, 김대중과 관계한다는 이해찬을 중심으로 한 복학생들의 시위 교사 정황, 서울시 22개 학생회장단, 사북탄광 실태조사, 외부 해직기자들과의 연대까지 일지처럼 상세하게 9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라며 "유시민은 자신의 자백 진술서에 77명의 이름과 행적을 적시함으로써 계엄당국은 사태 처음부터 서울대 등 당시 학원 상황과 학원관련 외부 움직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카드를 쥐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심 의원은 "이처럼 상세한 진술서에 대해 유시민은 방송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우스개마냥 이야기했다"며 "지나치게 상세한 그의 진술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가급적 숨기려했던 다른 관련자들에게는 무시무시한 공포가 되었다. 수사당국이 이미 알고 있는데도 하나라도 숨기려 했다가 곧바로 폭력의 세례 앞에 발가벗겨져야 했다”고 비판했다.

실제 심의원에 따르면 유 이사장의 당시 진술서에는 4월 11일 시국성토대회를 한다고 마이크를 접수하려던 복학생이 민청협회장이자 김대중씨와 관계한다고 소문이 돌던 이해찬(001180쪽), 복학생들이 5월 2일부터는 교내시위를 벌이면서 비상계엄문제를 이슈화하라고 지시했고(001196쪽), 사북사태보고서는 복학생 황광우가 조사반으로 현지에 다녀왔으며(001249쪽) 등을 비롯해, 5월 14일 심재철이 광화문으로 가두시위 할 것을 결정 발표하고 저는(유시민은) 목이 쉬어 학생들 지휘할 생각을 포기하고 학생들 틈에 섞여 있었으며(001230쪽), 5월 15일 12시 심재철의 지시에 따라 5000명이 모인 아크로폴리스광장에서 저는 사회를 보았는데 강경론과 온건론이 대립하여 서로 양보할 기미가 없었으므로 중립을 지켰고(001232쪽)등의 내용이 상술돼 있다.

이에 대해 심 의원은 "검찰과 경찰에겐 상세 지도나 다름없는 유시민의 진술서는 나를 기소할 때도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물로 재판부에 제출되었고(검찰 증거목록 정수 1582~1583), 유시민이 심재철에 대한 내란음모 등 피의사건에 관하여 임의로 진술하겠다고 작성한 8월 12일자 검찰관 작성의 참고인 진술조서는 본 의원의 유죄선고 증거로 채택되었고(정수 1354~1364), 검찰의 공소사실이 전부 유죄로 인정된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에도 유시민의 진술은 증거의 요지로 판시되었다(1심 판결문 160쪽 내지 162쪽)"고 지적했다.

특히 심의원은 1980년 서울역 시위대 해산 과정도 유시민의 행동이 미화되는 소재로 왜곡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유 이사장은 “해당 방송에서 버스위에 올라가서 해산하면 안 된다고 얘기를 하래요. 그래서 내가 올라가서 그 얘기를 했어요”라며 자신이 해산이 아닌 진군을 주장한 것처럼 발언했다.

이에 대해 심 의원은 "예능 화법으로 역사적 진실이 뒤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시대에 대한 폄훼"라며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광장 시위에 대해서도 유시민은 자신이 진술서에서 언급한 사실과 다르게 진실을 왜곡하고 자신의 행적을 대중의 입맛에 맞게 왜곡 미화했다"고 질책했다.

실제 인터넷 공간에서는 1980년 '서울역 회군' 당시 유시민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은 여기서 물러서면 모든 것이 끝이라며 회군을 반대했지만 심재철 총학생회장 반대로 회군이 이뤄져 결과적으로 민주화 인사들의 희생을 키웠다라는 식으로 기술된 글들이 다수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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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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