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론(雜論)

    기자칼럼 / 오현세 / 2014-01-07 15: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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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세 객원기자
    ▲ 오현세 객원기자
    요즘은 섞는 것이 대세다. 대중은 퓨전이라는 이름에, 지식인들은 통섭이라는 단어에 열광하고 있다.

    이런 단어들이 마치 작금의 난제를 한방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묘약처럼 대접 받고 있다. 따지고 보면 별 것도 아니다. 퓨전이란 기존의 것들을 섞어 새롭게 만든다는 뜻인데 무언가를 섞으면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아니한가.

    통섭도 마찬가지. 기존의 학문들로 하여금 자기 분야의 틀을 깨고 타학문과의 접목을 통해 새롭게 변신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퓨전이나 통섭처럼 멋들어진 이름을 쓰는가. 그냥 섞어서 새로운 것 만들자고 하면 너무 단순해서? 그래서 시시한가? 퓨전이니 통섭이니 하는 말을 사용하면 속된 말로 뭔가 있어 보인단 말이지?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단순 명쾌한 것은 쉽게 이해된다는 속성 때문에 오히려 가치가 덜한 것으로 치부하고 뭔가 난해해 보여야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 때문은 아닌 지 한번쯤 곰곰 생각 해 봐야 한다. 모두들 살기가 점점 더 힘들다고 하는데 쉬운 것을 버리고 어려운 것에 집착하니 인생이 쉬울 리 없지 않은가.

    퓨전이나 통섭 같은 이론이나 생각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나 생각해 보자.사람들에게 인생의 길을 가르쳐주는 듯 보이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이러한 이론도 탄생 배경은 하나, 만족스러운 생활, 행복한 삶의 추구다. 생활에 만족하여 삶이 행복하다면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지금 사는 것이 불만인데 뭔가 전혀 새로운 것은 기대 못하겠고 일단 기존에 있던 것이라도 이리저리 섞어보자. 그러다 보면 혹 뭔가 기발난 것이 나오지 않겠는가. 이런 구차한 기대가 이러한 단어들의 배경에 보이는 것이 영 씁쓸하다.

    그럴 바엔, 퓨전이나 통섭이 결국 섞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라면 잡(雜)이란 단어는 어떤가. 너무 친근해 속되거나 하찮아 보인다고 속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잡(雜)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단어는 현재 십중팔구 가치의 하위개념에 속해 있다. 잡상인, 잡동사니, 잡일 정도는 봐줄만하지만 ‘놈’이나 ‘것’같은 낱말을 덧대면 필경 욕이 된다. 그런데 이 잡이란 한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퓨전이나 통섭보다 더 선명한 행복이 보이니 웬일인지 모르겠다.

    雜을 뜯어보자. 맨 처음에 보이는 돼지머리 ‘해’자 ‘ㅗ’는 집을 나타낸다. 그 안에 사람 인(人)이 두 개 보인다. 여러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다시 그 아래 나무 목(木)이 있고 오른편에 새가 있다. 추(隹)는 새다.

    한자는 요즘처럼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컴퓨터로 만든 글자가 아니다. 아주 아주 오랜 옛날, 사람들이 간신히 비바람을 피해 움집을 짓고 가족을 이뤄 사람다운 삶을 시작할 무렵에 만들기 시작한 글자다. 이 ‘雜’이란 글자에서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우선 집이 있고 그 안에 여러 사람이 있다. 누구겠는가. 당연히 가족이다. 가족들 다음으로 보이는 것이 나무다. 시골에 산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굴뚝 옆에 바리바리 쌓여 있는 장작을 보며 느끼는 흐뭇한 기분을 알 것이다. 사는 데는 벌거벗은 몸 가리는 것보다 밥해 먹고 뜨듯한 것이 우선이다. 옷감이 아니라 나무가 있는 까닭이다. 마지막으로 새(隹). 그런데 이 새는 새는 새되 작은 새다. 송골매처럼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맹금류도 아니고 장닭처럼 통제 불능의 큰 놈도 아니다. 그런 큰새, 꼬리가 긴 새는 새 조(鳥)자를 쓴다. ‘추’는 병아리 메추리 같은 작은 새다. 방안에서 동거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 용도는 당연히 식용이다.

    이제 이 글자를 다시 보자. 밖은 비바람 혹은 눈보라가 치는데 가족들이 모두 모여 느긋이 군불을 때며 메추리구이를 뜯고 있다. 집안은 당연히 어지럽다. 난장판이다. 그러면 어떤가. 원시인들 동굴에 설마 고급 카펫이 깔렸겠는가?

    명절 때 아이들이 모여 집안이 들썩거릴 때면 행복한 미소를 띤 할아버지들이 그러셨다. ‘아이구 집안이 난장판이구먼’

    왜 잡이라는 글자를 붙들고 씨름했느냐. 잡기를 배우라고 권하고 싶어서다. 나이가 젊으나 늙으나 잡기를 배워야 행복해 진다. 집 하나만 있고 가족이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 것이며 가족이 있어도 땔나무와 먹거리가 없으면 어찌 할 것인가.

    평생 한 가지만 일만하다가 은퇴하여 그 일을 할 여건이 안 되는데 다른 것은 잘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어쩔 것인가? 친구들과는 무엇을 매체로 어울릴 것이며 혼자 지내는 시간은 무엇으로 메꾸려는가. 나이 들어 아무 것도 잘 하는 것이 없어 한 구석에 뻘쭘하게 자리 잡고 있으면 민폐다.

    잡기는 말 그대로 다양한 기예다. 절대 잡기를 한다고 잡놈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잡기에 능통한 사람은 더불어 맛깔 난 삶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양념 같으니 항상 귀하게 쓰임을 받는다. 스스로 즐거운 것은 말 할 나위도 없다.

    당신이 평범한 삶을 사는 보통 사람이라면 퓨전이니 통섭이니 하는 단어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신년에는 무언가 잡기 하나 꼭 배우기 간곡히 부탁드린다. 그래서 잡이란 글자 속에 가득 들어 있는 행복을 자기 것으로 만드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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