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대어급 주자 ‘풍년’의 의미는?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1-06-20 11:23:32
야권에서 최재형 감사원장의 '몸값'이 급격히 치솟는 모양새다.
반면 야권의 기대주로 꼽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심지어 최재형을 ‘뜨는 해’에, 윤석열을 ‘지는 해’에 비유하는 소리까지 들린다.
최재형 원장이 윤석열의 ‘대안 카드’로 거론되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다.
지난 18일 국회 법사위 발언을 기점으로, 최재형 원장에 대한 야권의 기대감은 한층 커졌다.
최 원장은 그날 대권 도전 여부에 대한 질문에 "생각을 정리해 조만간 밝히겠다"라고 답했다.
출마 가능성을 일축하지 않은 것으로 사실상 대권 도전을 시사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최 원장은 40년 가까이 법관을 지내며 숱한 일화를 남긴 ‘공직자의 롤모델’이자, 두 아이를 입양한 '인생 스토리' 등으로 인해 ‘미담 제조기’로 불린다. 감사원장 재직 기간에도 강직함과 균형 감각을 잃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감사원장으로서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을 밝혀내는가 하면, 지난 4월에는 공석(空席)이 된 감사위원(차관급)에 김오수를 제청해달라는 청와대 요구를 2차례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기도 했다.
감사원장을 포함해 총 7명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는 감사 사항을 최종 의결하는 감사원 최고위 협의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 원장이 제청하면 김오수를 바로 임명할 계획이었지만, 최 원장은 그의 정치 편향 때문에 제청하지 않았다. 여권 일각에선 이런 최 원장의 소신 행동이 '항명'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 같은 최재형 카드의 부상은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한 물음표가 커지는 상황과 맞물려있다.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1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처가 의혹이 정리된 파일을 입수했다고 밝히면서 “방어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라고 우려했다.
이날 장 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쓰기에 무척 괴로운 글”이라며 “얼마 전 윤 전 총장과 처, 장모의 의혹이 정리된 일부의 문서화 한 파일을 입수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윤 전 총장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지만, 이런 의혹을 받는 분이 국민의 선택을 받는 일은 무척 힘들겠다는 게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라며 “지난 대선에서 양심상 홍준표 후보를 찍지 못하겠다는 판단과 똑같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준스톤(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부르는 애칭)의비단주머니 3개도 소용없을 듯하다. 의혹이 3개는 넘는다. 의혹이 법적으로 문제없는 것과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건 다른 차원”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윤 전 총장이 출마하면, 후보가 되면, 의혹이 사실 여부를 떠나 네거티브의 달인인 현 집권세력이 ‘장난질’을 치기 너무 좋은 먹잇감이 될 것 같다”라고 전망했다.
물론 이에 대해 윤 전 총장은 "전혀 거리낄 게 없다"라고 일축했지만, 장 소장의 우려처럼 ‘법적’ 문제와 ‘정치적’ 혹은 ‘도덕적’ 문제는 다른 것이어서 대선 과정에서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윤 전 총장의 아마추어리즘도 불안한 요소로 거론되고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의 캠프 이동훈 대변인이 대변인에 선임된 지 열흘 만에 물러난 것이 그 단적인 사례다.
이 대변인은 20일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일신상의 이유로 직을 내려놓는다"라고 밝혔다.
대권 주자의 '입'인 대변인이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윤 전 총장의 대권가도가 초반부터 걸림돌을 만났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8일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 여부를 두고 메시지에 혼선이 빚어졌고, 결국 그게 사퇴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실제로 이 대변인은 당일 오전 라디오 방송에서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을 “당연한 것”이라고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윤 전 총장은 “민생 탐방 후 입당 여부를 결정하겠다”라면서 “입당 문제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신중하게 결론을 낼 것”이라는 엇갈린 메시지를 내놨다.
아마추어 냄새가 ‘풀풀’ 풍기는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물론 아직은 최재형 감사원장이 정말로 대선 출마를 할 것인지 확실치 않다. 윤석열 전 총장 역시 ‘지는 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이른바 ‘윤석열 X파일’이라는 것도 아직은 실체가 불분명하다. 어쩌면 ‘~카더라’ 수준의 뜬소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야권의 대권 주자로 유승민 하태경 같은 피라미 급만 우글거리던 상황에서 벗어나 대어급 주자들이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역시 야권의 대어급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국민의 열기가 그만큼 뜨겁다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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