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회는 ‘민주주의위원회’ 폐기에 협조하라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1-06-06 11:52:10

  주필 고하승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흔적 가운데 가장 큰 오점으로 기록되는 것이 바로 ‘서울민주주의위원회’다.


출범 당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오죽하면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인 숫자(110명 중 102명)를 차지하는 시의회에서 같은 당 시장이 추진하는 사업을 막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겠는가.


앞서 박 전 시장은 지난 2019년 7월 시민민주주의 기본계획 수립, 민관 협치, 시민 제안 발굴·숙의·공론화 등을 주요 업무로 하는 ‘서울민주주의위원회’를 출범시키려 했다.


사실상 시민단체들을 위한 조직인 것이다.


하지만 당시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는 박원순이 발의한 '서울민주주의위원회 설치' 조례 안을 만장일치로 부결시켰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10명은 물론 야당 2명(자유한국당, 정의당)이 뜻을 함께한 것이다.


그만큼 문제가 많았다는 뜻이다.


시의원들은 민주주의위원회가 2021년까지 서울시 일반회계의 5%(약 1조2000억원)의 예산심의권을 갖는 대목에 의구심을 표했다.


시민들이 서울시가 제출한 사업과 예산을 심의하라고 시의원들을 뽑았는데, 서울시가 구성한 위원회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시의회를 무력화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권수정 정의당 시의원은 “시민들이 뽑은 시의원들이 서울시가 제출한 예산을 숙의하고 최종예산안을 내고 있다”라며 “서울시 한 해 예산이 40조원인데 1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서울민주주의위원회에 넘긴다는 것은 사실상 시의회 권한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서울민주주의위원회가 특정 시민단체를 끌어들이기 위한 조직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채인묵 시의원은 “서울민주주의위원회 위원 참여요건으로 5년 이상 실무경력을 전제하고 있는데, 사실상 시민사회단체 경력이 없는 사람은 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특정단체를 끌어들이기 위한 조직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이후에 같은 당 시장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장악하고 시의회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조례를 통과시켜주었고, 위원회가 설립되기는 했으나. 이후에도 불명확한 업무 범위, 기존 조직과의 중복 업무,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위배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따라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를 그대로 두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취임 이후 조직개편을 통해 서울민주주의위원회를 폐지하려고 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시의회가 돌연 태도를 바꿔 위원회를 유지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심지어 오 시장의 조직개편이 "박원순 흔적 지우기"라는 황당한 주장도 나왔다.


시의회에서도 찬성하지 않는다고 했던 위원회였다. 시의회는 민주당이 절대다수로 사실상 민주당이 비판했던 위원회였다. 그런데 그걸 폐지하려고 하자 ‘박원순 흔적 지우기’라며 반발하는 시의원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인가.


실제로 시의회는 서울시의 조직개편안 가운데 서울민주주의위원회 폐지에는 반대하고 주택정책실 신설에는 찬성한다면서 수정안을 만들어달라고 시에 제안한 상태다. 시의회의 이 같은 제안은 사실상 '조직개편 거부'나 마찬가지다.


조직개편안은 10일 시의회 정례회에서 심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그런데 지방의회는 조직개편과 관련해 기구 축소, 기구 통·폐합, 정원 감축에 대한 사항 이외에는 수정 의결을 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전체 조직개편안에서 '서울민주주의위원회 폐지'라는 기구 통폐합에만 반대한다면서 이를 유지하는 쪽으로 시의회 자체적으로 부분 수정 의결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시 집행부가 수정안을 만들어서 제출해야 하지만, 물리적으로 10일 시의회 정례회에 제출할 수 없어 다음 회기로 넘겨야 한다. 이렇게 되면 통상 7월 1일자 3·4급 전보를 시작으로 개시하던 시 정례인사 일정도 미뤄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정을 시의회가 발목잡기를 한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는 민주당 정권은 물론 민주당의 서울시정 운영 방식에 대한 심판이다. 그것도 가혹한 심판을 받았다. 그렇다면 시의회는 정신을 차리고 민의를 수용하는 겸허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런데도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이 압도적 다수라는 힘만 믿고 독선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다음 지방선거에서도 서울시민들은 회초리를 들게 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원안에 찬성하는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서울시정은 온전히 시민을 위한 시정이 돼야 한다.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가 시민보다 우선하는 건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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