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거버넌스]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 기억여행' 전시 사이트 오픈

청량리역·경동시장·오스카극장··· 사라진 옛 풍경과 낯선 기억들
1960년대 이후 시대별 주요명소·생활상 생생하게 전달
지역 문화·역사 탐방학습 콘텐츠도 사이트에 공개 추진

이대우 기자

nice@siminilbo.co.kr | 2020-08-31 13:09:45

▲ 1970년 청량리역 광장 모습. (사진제공=동대문구청)

 

[시민일보 = 이대우 기자] 서울 동대문구(구청장 유덕열)가 기록 전시 사이트 ‘동대문구 기억여행’을 오픈했다.

동대문구 기억여행은 구민의 일상과 함께 했던 동대문구의 주요 장소를 사진, 동영상, 글 등의 기록을 통해 재조명해 보는 디지털 아카이브 프로젝트로, 사이트를 통해 ▲1960년대 말 가난과 절망에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던 오스카극장 ▲비둘기호열차 타고 엠티를 떠나던 청량리역 ▲자식들 한약 달여 주러 들렀던 경동시장 ▲신혼집 마련하고 골동품 사러 아내와 들렀던 답십리 골동품 골목 ▲시대별 대학생 생활상 ▲1960년대 동대문구청사 등의 이야기를 기록을 통해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유덕열 구청장은 “동대문구 기억여행에서 과거 기록을 통해 동대문구에서의 삶과 추억을 되돌아보고, 현재 기록을 통해 동대문구의 역동적인 발전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기록을 수집하여 추가하고, 초·중·고 학생들이 지역 문화와 역사를 탐방할 수 있는 학습 콘텐츠도 사이트에 공개할 계획이다. 미래 후손들에게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기록들을 남겨주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시민일보>는 ‘동대문 기억여행’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 보제원에서 약령시까지


조선 시대 한약의 중심지는 구리개(지금의 을지로입구)와 배우개(지금의 종로4가), 그리고 대구, 평양, 함흥, 대전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서울의 구리개는 조정관인들이 이용하는 한약상가였고, 배우개는 주로 서민들이 이용하는 약국이 분포했다. 또한 성동역 부근은 1960년 공설시장으로 시작된 경동시장의 중심이었다.

서울약령시는 1960년대 말부터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한약재를 취급하는 약재상들이 모여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다.


이후 경제발전과 더불어 질적, 양적 팽창을 거듭해 명실상부한 한국 제일의 한약재 시장 및 한약진료, 투약지역으로 발전하게 됐다.

약령시 상인들의 조합인 서울약령시협회는 한약상가의 기원을 조선시대 가난한 백성을 위해 무료시술을 베풀었다는 보제원에서 찾고 있다.

동대문구에는 또한 경희대한의대가 위치하고 있어 한의약에 대한 학제적 접근 및 한의사 배출이 이뤄지고 있다. 동대문구는 지리적으로 동쪽의 관문이자 보제원의 전통을 잇는 약령시로 대표되는 한의약의 메카이다.

■ 동대문구의 일상

청량리역 앞 롯데백화점 자리에는 대왕코너가 있었다. 대왕코너는 세 차례의 대형화재로 유명하다. 1960년대 영업을 시작해 동대문구민들과 역사를 함께 한 상징적 장소이다.


이처럼 동대문구에는 구민들과 일상을 함께 한 장소들이 있다. 지금은 사라진 오스카극장, 대왕극장, 답십리극장이 있다.

이 옛극장들 안에서는 구청의 공식행사가 열리고 복권을 사면 표로 바꿔주기도 했다. 중랑천은 친구들과 멱감던 곳에서 가족들과 자전거 타고 산책하고 수영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 동쪽의 관문 동대문구


동대문구는 청량리역, 지금은 없어진 동마장 시외버스터미널, 경춘선의 시발점이던 성동역 등이 위치한 동쪽의 관문이었다. 청량리역은 조선시대 명성황후가 선농단에 들르기 위해 개설한 전차의 종점이었고 춘천 등지로 MT 떠나는 대학생들의 집결지였다.

청량리 부근은 청량리역, 성동역(폐쇄), 동마장터미널(폐쇄) 등 교통의 요지로서 한반도 동부와 중부 일부지역의 물산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로 인해 자연스레 시장이 발달하게 됐고 그 결과로 남아있는 것이 청량리 일대의 많은 전통시장이다.

국내 최대의 재래시장인 경동시장, 서울 내 최대의 청과물 시장인 청량리청과물시장, 청량리수산물시장, 깡통시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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