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선 연기론’ 버틸 재간 있나?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1-06-07 12:41:52

  주필 고하승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대선 경선 연기론에 다시 불이 붙었다. 가장 강력한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측이 반발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대세는 ‘연기하자’라는 쪽으로 기운 것 같다.


현행 민주당 당헌은 '대선 180일 전'에 후보를 확정하게 돼 있다. 이 경우 민주당은 9월 9일 전까지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 11월에 대선 후보를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힘보다 두 달 정도 이르다.


이에 따라 경선 흥행을 위해선 9월 예정인 경선을 11월로 미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지사 측은 예정대로 치러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이 지사 측은 민주당이 애초 예상한 예비후보 등록일(21, 22일)에 맞춰 21일 전후 대선 출마 선언을 계획 중이다. 출마 선언일을 그날로 결정한 것은 '경선 연기는 없다'라고 못 박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이재명 지사의 측근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경선 일정 연기론에 대해 7일 “또 당헌을 개정하는 원칙 없는 정당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라며 반대했다.


이 지사의 지지모임 ‘성장과 공정을 위한 국회포럼(성공포럼)’ 공동대표이기도 한 김 의원은 이날 오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경선 연기론에 대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지난해 8월에 만든 당헌·당규를 지켜야 한다”며 이같이 답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일부 대선주자들은 물론 일부 초선 의원들까지 경선 연기를 논의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등 날이 갈수록 연기론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여권 대선 주자 중 대선 경선 연기 논의를 당에 공식 요청한 사람까지 등장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최문순 강원지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대선) 경선 일정을 연기하면 좋겠다. 다만 일단 모여서 토론하자”라며 “제가 보기에는 경선을 연기하자는 당내 사람들의 수가 연기하지 말자는 사람의 수의 비율이 7대3 정도로 많다”라고 주장했다.


최 지사는 전날 기자회견에 앞서 민주당 당 대표실을 방문해 ‘민주당 대선 경선 활성화 연석회의 건의문’을 내기도 했다.


앞서 대권 도전을 선언한 김두관 이광재·박용진 의원도 경선 연기론에 찬성 의사를 드러내고 양승조 충남지사 등도 연기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그동안 원론적인 수준의 입장만 되풀이했던 이낙연·정세균 후보 측도 내심 경선 연기를 희망하는 상황이어서 그들이 공개적으로 경선 연기에 대해 찬성할 경우, 이 지사가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더구나 당내에서도 일부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경선 연기를 논의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등 날이 갈수록 연기론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여서 송영길 당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이를 마냥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 ‘더민초’ 운영위원장인 고영인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최근 초선 의원 4∼5명으로부터 경선 연기 문제를 공식 의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전했다. 야당의 이준석 열풍과 당내 경선 흥행 실패에 대한 우려 등으로 경선 연기론 주장은 앞으로 당 안팎에서 더욱 거세질 것이다.


따라서 이재명 지사가 제아무리 “연기 불가”라고 외쳐봐도 소용없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 내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 지사가 어쩌다 이런 참담한 지경에 처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이재명은 확실한 승리 후보’라는 믿음을 심어주지 못한 까닭이다.


머니투데이와 미래한국연구소가 여론조사업체 PNR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5일 전국의 유권자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재명 지사를 압도했다.


윤 전 총장은 이 지사와의 가상 양자 대결에서 52.1%를 기록하며 39.5%에 그친 이 지사를 무려 12%포인트 넘게 앞섰다. 윤 전 총장은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이 지사에 앞섰다.


다자간 대결에서도 윤 전 총장이 35.7%로 25.7%의 이 지사보다 10%포인트나 앞섰다.(이 조사는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자동응답 전화 조사 무선 100%'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3.3%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이재명 지사가 비록 여권 주자들 가운데서는 선두이지만, 이처럼 야권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윤석열과의 가상 양자 대결의 경우 ‘필패 후보’라는 결과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경선 연기론’은 불가피하다.


물론 9월 이전에 지지율을 끌어올려 야권 누구와 대결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당에 심어준다면 경선 연기론은 소멸하겠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 정책마저 뭇매를 맞는 상황에서 무슨 수로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겠는가. 차라리 미련을 버리고 대범하게 경선 연기론을 수용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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