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선관위, 미덥지 못하다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1-03-31 13:38:01

 

주필 고하승


여성단체로 구성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공동행동)은 최근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현수막을 내거는 캠페인을 기획했지만,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선거법 위반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 ‘불허 사유’가 참으로 가관이다.


국민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실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31일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에게 보낸 답변서를 통해 "임기 만료 선거와 달리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고 일반 선거인이 선거 실시 사유를 잘 알고 있는 게 이번 보궐선거의 특수성"이라며 “해당 캠페인이 투표행위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위법이라고 판단했다”라고 불허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관위는 “공직선거법 제90조에 의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라고 못 박았다.


국민이 이번 보궐선거가 왜 치러지는지 잘 알기 때문에 사실을 적시하는 현수막을 내걸어선 안 된다니 과연 이런 결정을 내린 선관위를 믿어도 되는지 의문이다.


또 선관위는 ‘권력형 성추행 범죄로 실시하는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비용 국민 혈세 824억 원 누가 보상하나’라는 문구의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서도 선거법 위반이라며 불허했다.


공직선거법 제90조에 의해 ‘특정 정당의 명칭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명시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게 이유다.


어디 그뿐인가.


선관위는 '우리는 성 평등 서울을 원한다'라는 문구는 허용하면서도 '나는 성 평등·페미니즘에 투표한다'라는 문구는 불허했다.


평등한 서울을 원한다는 건 단체가 지향하는 정책을 나타낸 정치적 의사 표현으로 봐 제한하지 않았지만 '나는 투표한다'라는 표현을 담은 현수막은 해당 단체의 명칭과 활동상황 등을 감안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현수막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선관위의 이 같은 설명은 비겁한 궤변에 불과하고, 유권자의 기본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 행위로 용납하기 어렵다.


선관위의 최근 활동이 가뜩이나 집권당에 편파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결정은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앞서 선관위는 지난 19일 익명으로 야권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는 신문 광고를 실은 시민 A씨에 대해서는 직접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광고에 후보자 이름인 ‘오세훈’ ‘안철수’가 들어가서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여권에 대해선 지나치게 관대하다.


선관위는 지난달 문 대통령이 부산 가덕도를 찾아 신공항 건설을 지시한 것도 “국정 책임자로서 직무상 행위”라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청이 산하 주민센터에 설치한 안내 배너에 민주당의 상징색·기호를 연상하는 배너를 쓴 것에 대해서도 “선거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했으며, 친여 성향의 교통방송(TBS) ‘일(1)합시다’ 캠페인도 ‘문제가 없다’라고 판정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이 “선관위마저 내로남불”이라고 한탄한 것은 이런 연유다.


오죽하면 “선관위가 심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선거판에 나와서 선수로 뛰라”는 소리까지 나오겠는가.


지금 세간에선 ‘문재인 선관위’, ‘민주당 선관위’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선관위의 이중잣대에 불만의 소리가 높다. 특히 사전 투표를 믿지 못하는 유권자가 증가하는 것은 선관위의 이런 ‘알쏭달쏭’한 태도가 한몫하고 있다.


불공정 시비가 또 불거지지 않도록 선관위는 철저하게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를 공정하게 치르는 역할이 선관위의 역할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