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선택’ 허용한 이상한 경선룰…왜?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1-08-19 13:42:22
주필 고하승
지난 6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시 이준석이 당 대표가 되면, 경험 미숙 등으로 인해 당이 심각한 위험에 직면할 수 있을 것이란 경고음이 여러 차례 나왔었다.
필자 역시 지난 6월 1일 자 칼럼에서 “이준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유승민계다. 자신이 유승민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할 정도”라며 그가 당 대표로 선출되면, 불공정 경선 문제로 당이 심각한 내홍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같은 칼럼에서 이준석이 대표가 되면 야권통합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필자는 “이준석은 스스로 ‘내가 안철수를 싫어하는 건 세상이 다 안다’라고 말했다. 유승민과 안철수는 바른미래당을 공동으로 창당했지만, 이후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고 결국, 결별했다”라며 이준석이 대표가 되면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은 물 건너갈 것이라고 단언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우려가 불과 2개월여 만에 현실로 나타났다.
전대 당시 이준석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유인태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도 19일 C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최근 국민의힘 중진을 만난 사실을 언급하며 “선배님이 그때 방송에서 그렇게 이준석을 띄워주더니 지금 이준석 때문에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 우리 당 망치게 하려고 당신이 그런 소리 한 거 아니냐는 원망 섞인 말을 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역시 0선의 미숙함이다. 당 대표가 저렇게 여러 가지 분란을 일으키는 선거는 처음 보는 것 같다“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잃어버린 것 같다. 지금 대표가 아직도 어떤 특정 후보에 대한 애착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도 이날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종인 위원장 없이 대선을 치러서 이겨야만 젊은 정당이 된다고 봤다”라며 “그런데 이제는 어른을 모셔와서. 앉혀놓고 호통을 좀 듣더라도 그게 훨씬 낫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타깝고 참담하다. 당 대표가 대선 주자와 상당히 분란을 일으킨다든가 언쟁을 한다든가 (하는 모습은) 과거에는 보기 힘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전당대회 이전에 우려했던 모든 게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준석은 당원들의 선택을 받은 대표가 아니다.
15만 명 이상이 참여한 당원투표에선 1등을 하지 못했다. 고작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이겨 당 대표가 되었을 뿐이다. 그것도 민주당 지지층 등 다른 정당 지지층의 역선택을 허용한 이상한 여론조사에서 승리한 탓에 ‘트로이 목마’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까지 붙게 된 것이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서병수 경전위원장은 이번에도 역선택을 허용하는 이상한 경선룰을 결정하고 말았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 측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이 역선택 방지조항을 요구했음에도 외면해 버린 것이다.
심지어 유승민 전 의원 측은 역선택을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논평을 발표하면서 "역선택 방지 운운하는 것은 그만큼 대선주자로서 자신 없음을 실토하는 것"이라고 역선택 방지를 요구한 윤 후보 측과 최 후보 측을 비판했다. 역선택 허용은 중도층의 지지를 받기 위한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에 최재형 캠프의 이규양 공보특보가 '민주당 지지자가 중도층인가'라는 제하의 논평을 통해 "유승민 후보가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역선택 방지 얘기를 하는데 느닷없이 중도층을 언급하며 물타기를 하지는 말기 바란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역선택 방지책이 도입될지는 의문이다.
이준석 대표와 정치적 ‘부자 관계’인 유승민 전 의원이 역선택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데다가, 이런 황당한 경선룰을 결정한 서병수 의원이 당 선거관리위원장으로 다시 임명될 가능성이 큰 탓이다. 실제로 이준석 대표는 최고위원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병수 경준위원장을 선거관리위원장 임명할 태세다. 그래서 걱정이다.
그동안 여야 모두 당 경선에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일부 반영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대상은 어디까지나 자당 지지층이나 무응답층으로 한정했다. 지금 국민의힘 경준위가 결정한 것처럼 더불어민주당이나 열린민주당, 정의당과 같은 다른 정당 지지층은 예외로 했다. 그들은 상대진영에서 약체 후보가 선출되도록 역선택할 것이 불 보듯 빤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를 할 경우, 국민의힘 지지층이 아닌 사람들 비율이 무려 50%를 상회 한다. 결국, 다른 정당 지지층이 국민의힘 후보를 선출하게 되는 셈이다. 이건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이걸 바로 잡자는데 딴소리하는 사람들은 국민의힘 후보로 나설 자격이 없다. 그런 사람들은 왜 자신이 국민의힘 지지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지 되돌아보고 후보직을 사퇴함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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