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TENET) 리뷰·해석] 자유의지를 갖는 주체로서의 인간을 말하다.
시민일보
siminilbo@siminilbo.co.kr | 2020-10-05 15:13:31
*이 글에는 약간의 영화의 내용이 포함 될 수 있으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인버전이라는 것을 소재로 그려낸 이 첩보영화의 타임라인은 스크린에 그려지는 장면들만큼 혼란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이는 테넷을 시간의 순방향으로만 이해하려고 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테넷은 영상이라는 순방향적 시간성이 부여된 매체를 통해 표현되지만, 테넷 안에 담긴 시간성은 순방향이 아니다.
미래의 닐이 현재의 주인공을 도와주는 첫 장면부터 시작해서, 현재의 주인공이 과거의 닐을 만날 것을 암시한 결말까지, 영화의 모든 장면은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처음과 끝이 있는, 시간에 얽매여진 영상이라는 매체를 활용했지만, 그 안에 과거와 현재, 미래의 경계는 없다. 시간은 하나의 총체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What's happened, happened. / 일어난 것은 일어난다.'라는 대사가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대사라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해주는 인과라는 것은 더는 중요하지 않다. 일어난 것은 일어날 뿐이다. 그것이 이 영화가 전달하고 있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다.
그렇기에 영화가 보여주는 인버전 연출은 영화가 담고 있는 무시간, 혹은 총체로서의 시간 개념을 관객에게 시각적으로 표현해주는 주요 소재가 된다.
이와 더불어 거꾸로 재생되는 음향의 탁월한 사용은 인버전의 표현에 더욱더 몰입하게 해준다.
스토리, 연출, 음향 등 영화의 모든 구성이 총체로서의 시간 앞에 합일된다.
이렇게 해서 테넷은 시간성으로 특징되는 영상이라는 매체에서 무시간, 혹은 총체로서의 시간 개념을 탁월하게 담아낸다. 시간에 한정된 영상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간접적으로나마 뛰어넘은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바로 테넷이 앞으로 영화사적으로 가지게 될 의미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가 테넷을 고평가하는 데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마치 영화에서 말하듯, 시간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고, 하나의 총체로서, 일어난 것은 일어날 뿐이라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엇이 되는가.
'Ignorance is our ammunition. / 무지가 우리의 무기야.'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시간일지라도, 일어난 것은 일어날지라도, 미래를 모르는 상태라면, 그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이다.
무지하다면, 미래를 모른다면, 인과가 정해져 있다 한들 그것은 나에게만큼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테넷에서 무지는 미래로부터 힘을 빌어오는 사토르에 대항하는 무기가 된다.
무지라는 무기 덕분에,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시간일지라도, 일어난 것은 일어날지라도, 아직 나에게 당도하지 않았기에, 모든 순간은 영화 속 닐의 대답처럼 그저 실제(reality)가 되는 것이다.
이는 결정론 안에서 인간이 갖는 자유의지라는 희망이 된다.
이렇게 영화 테넷은 미래에서 힘을 빌어온 사토르로 대변되는 결정론, 그리고 이에 맞서는 자유의지에 대한 휴머니즘 서사로서 완성된다.
캣이 사토르를 죽이고 자유를 얻어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은 이를 표현한 완벽한 연출이지 않을까 싶다.
결국, 인버전은 영화의 소재일 뿐 주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영화 테넷의 주제는 자유의지를 갖는 주체로서의 인간이다.
그렇기에 'What's happened, happened. / 일어난 것은 일어난다.'가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설정이었다면 'Ignorance is our ammunition. / 무지가 우리의 무기야.'는 영화 테넷이 전달하고자 하는 삶의 자세가 된다.
일찍이 크리스토퍼 놀란이 실존주의에 영향을 많이 받은 감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일리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제목에 대해서 개인적인 해석을 더하며 글을 마치겠다.
TENET : 교리
영화 테넷은 '무지라는 무기로 결정론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자유의지라는 ‘TENET / 교리’를 가슴에 품고 ‘reality / 실제’라는 순간들을 살아내어 가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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