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의 숭고함과 사익의 존중, 잃어버린 균형을 찾아서

시민일보

siminilbo@siminilbo.co.kr | 2026-07-05 10:35:48

 

주현철 국민의힘 외신 대변인


유학 시절, 내 책장에는 늘 정치와 사회를 다룬 서적들이 꽂혀 있었다. 1990년 무렵,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대한민국은 미국인들에게 그 위치조차 낯선 변방의 작은 나라에 불과했다. 당시 미국은 한국보다 체감상 여섯 배는 더 잘사는 듯했고, 그 압도적인 풍족함은 내게 깊은 부러움이자 풀리지 않는 화두로 다가왔다. 지금의 한국과 베트남의 격차 정도였으리라.

그 시절 내 삶을 관통한 첫 번째 질문은 "어떻게 나라는 부국(富國)이 되는가"였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사회과학 책에 빠져들었다. 세상을 바꾸는 지도자들의 성패를 복기하며, 한국을 어떻게 부강한 나라로 만들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기였다.

두 번째 질문은 '진리'와 '종교'에 관한 것이었다. 오랜 기간 나는 신의 존재를 부인했다. 인간의 이성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영역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2년 전, 아내의 간절한 기도와 곁에서 지켜본 친한 후배의 모범적인 삶에 감화되어 동작구의 한 작은 성결교회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평생의 독서와 이성적 탐구로는 가닿을 수 없던 신을 만나는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특정 종교의 절대성을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종교가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빚어낸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깨달았다. 이 차가운 세상에서 오직 자신의 능력만으로 따뜻한 인간성을 유지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나는 기독교적 가치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음을 믿으며, 매일 아침 기도와 성경 읽기로 하루를 연다.

어린 시절 품었던 근원적인 호기심과 치열한 사유는 결국 한 인간의 됨됨이를 꼴 지어낸다. 지금의 내가 대단한 존재는 아닐지라도, 내 자리에서 이만큼의 몫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지난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축적해 온 독서와 고뇌, 그리고 신앙의 흔적 덕분일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묵도하면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공익적 사고는 자취를 감추고, 모든 헌신과 직분을 결국 '돈'으로 환산하려는 세태가 만연해 있다. 나는 이러한 병폐의 기저에 역사의 공로와 희생마저 금전적 보상으로 치환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좌파적 사고가 짙게 깔려 있다고 본다.

물론 공익을 추구한다고 해서,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부를 축적하는 사익 추구 행위마저 맹목적으로 비난하거나 죄악시해서는 안 된다. 지난 20여 년간 규제 정책의 최전선과 법률 현장을 넘나들며 절감한 것은, 누구나 더 잘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속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법관 등 고위 공직을 지낸 법조인이 대형 로펌으로 향해 막대한 부를 거머쥐는 것이 공직의 유일하고도 당연한 귀결이 되어서는 곤란하겠지만, 공익적 삶을 헌신적으로 마친 이후 자신의 전문성으로 부를 창출하는 행위 자체가 경멸의 대상이 될 필요는 없다.

진짜 위기는 자신의 '업(業)' 그 자체를 숭고하게 여기는 직업윤리가 실종되었다는 데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위험한 지점에 도달했다. 특히 과거 자신들의 사회 운동과 민주화 투쟁을 기어코 권력과 돈이라는 청구서로 환산해 낸 이른바 '386 세대'의 행태가 나라를 절벽 끝으로 몰아넣은 탓이 크다.

이제는 공익적 삶의 숭고함과 사익적 삶이 가지는 건강한 욕망 사이에서 냉철하게 각자의 장단점을 직시하고, 그 밸런스를 다시 찾아야 할 국가적 중대 기로에 섰다. 나는 지금까지 쌓아온 사유와 정책적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이 치명적인 불균형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다.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