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이제야 불지핀 가마로 걸어들어갈 준비가 됐다!
시민일보
siminilbo@siminilbo.co.kr | 2025-11-30 10:40:47
12월 초 사흘, 100년 관록의 화랑인 ‘통인’에서 전시를 앞둔 도예가 이종능은 전세계를 휘돌아 이제야 서울에서의 첫 전시를 하는 이유를 묻자 “준비가 덜 된 탓이라고 단언하며 40년동안 전세계 전시를 만행하듯 휘돌고 나서야 겨우 빈그릇을 내 놓을 배짱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우주를 테마로 한 그의 작품세계는 일면 거칠어 보이기도 한다. 그냥 그리 보이는 게 아니라 야생의 흙을 직접 채취해서 토렴을 하고 유약을 만들어 빚는 탓에 그의 작품은 자연의 숨을 그대로 살려 불 속에 맡기는 그의 성정을 닮아 그야말로 자연스럽거나 놀랄 정도의 발칙함을 삐죽이 내밀고 있다.
"일런 머스크가 알면 오프닝때 달려올만 한 작품들인데..."라며 웃지도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
똑같이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 '화성에서 온 오로라' 연작 작품 때문에 대화를 많이 하셨겠군요"
그제서야 파안대소하며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심마니처럼 산을 가로질러 가서 거친흙을 캐고 토렴하고 빚은 손이 짐작보다 곱고 부드러워 의아했다.
"바위를 갈아 낼때도 아이 살갗을 다루듯이 다루면 고와집니다"라며 또 웃는다.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경주고를 졸업하고 경상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게 애초의 잘못이다" 라고 말했다.
경영학과에서 무엇을 경영하라는 지침없이 배운 탓에 졸업 후 700여개의 아이템을 놓고 하니씩 지워보니 남은것이 "도예가"였단다.
그 후로 도예라는 화두를 들고 대학원 대신 배낭메고 두발 로 걸으며 3년을 걸었었다. 그 시간이 예술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고 바로 "도예가로 살아야겠다"라는 결심을 한 거냐 물었더니 "그렇다고 정직하게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얘기 할 수가 없잖아요?"
라는 말이 되돌아 왔다.
순간, ‘아니 이 사람이 혹시?’ 당혹해하는 내 표정을 보며 도예가 이종능은 손사래치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저 '또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해병 수색대 나왔구요. 지난 40년 동안 도자기 작업만 하면서 뉴욕, 동경, 위싱턴, 파리, 런던, 아부다비 전시를 거쳐 두바이 전시까지 성황리에 마치고 이제야 고국전을 열게 된 정상적인 아티스트 입니다"
40년 동안 대체 무엇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물었더니 "그저 빈 그릇들을 만들었을 뿐"이라고 말하고는 빙긋이 웃었다.
아직, 할 말이 많다는 표정이었다.
좋은 질문을 기다리던 그에게 던졌다.
"빈그릇을 왜 만들었을까요?"
아주 작은 빈그릇부터 세계 최대 유일의 달 항아리까지 빚어 낸 도예가 이종능의 답은 명쾌했다.
"인간은 욕망이 있지요. 그 넘쳐나는 욕망들을 꺼내서 담을 그릇이 필요 하다는 걸 제가 알거든요. 그것들을 담고 싶은 사람들이 제 작품을 찾아 옵니다. 그 빈 그릇에 꽃을 담거나 바람을 담거나 돈을 담거나 그저 비어있음을 담아내는 이도 있겠지요. 그 비어있음이 작은 우주라는걸 아는 이도 있고 모르는 이도 있고...”
경영학을 전공하고 나서 스스로 무엇을 경영해야 할지 몰라 치열한 방황을 하던 끝에 뾰족한 메세지를 받아 전생에 하던 일처럼 그 일을 하다가 문득, 꿈 깨듯 각성하니 40년이 흘렀더라는 다소 환타스틱한 전시의 변을 내 놓았다.
그에게 "어찌 그 어려운 해외전시만 계속 하게 됐는가?" 물었는데, 해외에 있는 컬렉터들은 "네가 누구냐고? 묻지않고 이 작품을 네가 만들었는가? 만을 물었기 때문에 대화가 편했던 탓"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하는데 사람들은 묻는다. 어느 대학, 누구 밑에서 배운 거냐고 그럴때 마다 그는 똑같이 답했다.
"저는 기술을 배워서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
그래도 그렇지라고 말하며 집요하게 묻는 이들에게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1300도가 넘는 가마의 불꽃을 넋놓고 바라보는 그의 옆 모습을 보며 "이제야 가마속으로 걸어들어갈 준비가 됐다"고 한 말이 떠올라 무의식적으로 손을 잡았다.
따뜻하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