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대표’가 ‘원내총무’인가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4-05-01 11:22:58
더불어민주당에서 ‘찐명’ 박찬대 의원이 사실상 원내대표로 추대된다. 국민의힘에서는 ‘찐윤’ 이철규 의원의 단독 출마로 기우는 분위기다.
국회의원들이 투표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입김이.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의 힘이 작용한다는 측면에서 보스 정치가 지배했던 3김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3김시대를 비롯하여 보스 중심의 카리스마 식 정치가 존재하던 과거에는 ‘원내대표가’ 아니라 ‘원내총무라’로 불리었다. 의원들이 직접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당수가 임명하는 체제였다. 이 때문에 원내총무는 당수의 최측근 실세가 지명되는 경우가 잦았다. 실제로 김영삼의 최측근이었던 최형우와 김동영이 각각 통일민주당의 2대 원내총무와 민주자유당의 초대 원내총무를 지냈었다.
박찬대 의원이나 이철규 의원이 여야의 원내대표가 되는 것은 사실상 ‘원내총무’의 그 시절로 회귀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원내대표라는 직책은 각 의회 내 의원 중의 대표를 뜻한다. 국회법에 따라 지칭되는 공식 명칭은 대표의원이다. 공문에서 사용하는 공식 직함 또한 'OO당 대표의원'이다.
일반적으로 당의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각 당에 소속된 국회의원이 의원총회를 통해 선출한다. 당 대표가 임명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당 대표와 함께 ‘투톱’으로 불린다.
원내대표는 당 대표와는 공공연하게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그렇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입김에 의해 선출된 원내대표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차피 민주당은 기대할 게 없다.
이미 박찬대 의원이 단독출마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아직 변화의 기회가 남아 있다.
당내에서는 차기 원내대표에 이철규 의원이 적임자라는 대세론이 불었던 것이 사실이다. 총선 패배 책임론과 친윤 핵심에 대한 반감에도, 원내대표 후보 등록 4월 30일까지 그 누구도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았던 것은 그런 연유다.
실제로 4선에 당선된 김도읍 의원에 이어 수도권에서 3선에 성공한 김성원 의원마저 "이번 원내대표는 더 훌륭한 분이 하시는 것이 맞겠다는 판단"이라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따라서 이철규 의원이 사실상 원내대표로 추대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총선 참패에 큰 책임이 있는 인물이 원내 사령탑에 오르는 모습은 민심 역행에 대한 부담을 더 키운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30일 페이스북에 "총선 내내 인재영입위원장, 공천관리위원으로, 총선 직전엔 당 사무총장으로 활동한 의원의 원내대표설이 흘러나오지 않나, 자숙도 모자랄 판에 무슨 낯으로 원내대표설인가"라며 "그렇게 민심을 읽지 못하고, 몰염치하니 총선에 대패한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페이스북에 "패장(敗將)을 내세워 또 한 번 망쳐야 하겠나"라며 "대구에 앉아서도 뻔히 보이는데 서울에 있는 니들은 벙어리들인가"라고 날을 세웠으며, 윤상현 의원은 “이철규 의원은 벌을 받아야 할 분이지 상 받을 분은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심지어 친윤계 배현진 의원도 "이철규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하실 것을 촉구한다“라면서 "민심을 등지고 지탄 받을 길을 일부러 골라가지 말자"고 읍소했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거와 관련해 “오해받을 생각이 없다. 민심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참모들에게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당무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오랜 원칙”이라며 “대통령실은 여당 원내대표 선거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 오해를 살만한 어떠한 행동도 하지 말라는 것이 윤 대통령의 방침”이라고 전했다.
물론 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원론적인 견해를 피력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측근을 원내대표로 만들려고 하는 이재명 대표와는 다른 태도라는 점에서 일단 박수를 받을 만하다.
이제는 이철규 의원의 판단만 남았다.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민주당이 그러니 우리도 그렇게 하겠다는 건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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