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구속영장 청구’와 李 ‘긴급 병원 이송’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3-09-18 11:28:20
이걸 공교롭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타이밍이 절묘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단식으로 건강이 악화해 병원으로 긴급 후송된 18일, 검찰이 이 대표의 사전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이 대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위증교사 및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
그런데 건강 악화로 병원에 긴급이송된 사람을 구속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입장은 명확하다.
그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수사받던 피의자가 자해한다고 사법 시스템이 정지되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며 "그런 선례가 만들어지면 앞으로 잡범들도 다 이렇게(단식)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지금처럼 소환 통보를 받고 나서 시작하는 단식은 저도 처음 봤다"라며 "과거에도 힘 있는 사람들이 죄짓고 처벌을 피해 보려고 단식하고, 입원하고, 휠체어 타고 이런 사례가 많이 있었지만 성공하진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이 대표의 단식은 ‘검찰 소환 통보받은 피의자의 자해소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사받던 피의자의 병원 이송 여부와 관계없이 법은 법대로 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법원과 국회는 이 대표에 대한 체포 동의 절차를 밟아야만 한다. 먼저 법원이 검찰에 체포 동의 요구서를 보내면 이 요구서는 대검찰청과 법무부를 거쳐 국회에 제출된다. 국회의장은 체포 동의 요구서를 받은 뒤 처음 개의하는 본회의에서 이를 보고하고, 국회는 보고 24시간 뒤 열리는 본회의에서 표결 절차를 밟는다.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이르면 오는 21일 본회의에 보고되고, 25일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여기서 부결되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지 않아도 된다.
앞서 지난 2월에도 검찰이 위례·대장동 개발 비리와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민주당 반대로 부결 처리돼 영장실질심사를 받지 않았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이 대표가 본인 스스로 지난 6월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한 바 있으며, 이 대표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당 소속 의원들에게 '가결 요청'을 해야 한다는 게 당내 의원들의 견해다. 방탄 논란 없이 법원의 영장심사를 받으라는 것이다. 이 대표 사퇴를 요구했던 비명 강경파 일각에서는 이 대표 구속 즉시 차기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었다.
그런데 이 대표의 느닷없는 단식과 긴급 병원 후송으로 분위기가 반전되는 모양새다.
박주민 의원은 이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체포동의안 오면 부결돼야 한다 "고 말했다. 이미 당내에선 '표결 거부'에 '당론 부결' 주장까지 나온 바 있다.
이 대표의 단식으로 그런 목소리는 더욱 거세질 것이고, 이런 상황이라면 비명계 의원이나 소신파 의원들도 개딸들이 무서워 선뜻 찬성표를 던지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옥중공천’ 이야기까지 공공연하게 나오는 마당 아닌가.
만일 이 모든 것이 잘 짜인 각본이라면, 그러니까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시점에 이재명 대표가 건강 악화로 병원에 긴급 후송되고, 그로 인해 당내에서 체포동의안 목소리가 더욱 거세져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는 것이 모두 예정된 시나리오라면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시나리오가 성공을 거두게 해서는 안 된다.
한동훈 장관의 말처럼 수사받던 피의자가 자해한다고 사법 시스템이 정지되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안 된다. 검찰은 물론 법원도 피의자의 단식 자해소동에 끌려가선 안 된다. 누구든 정해진 절차와 사법 시스템에 따라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피의자에게 법령상 보장되는 권리 이외에 다른 요인으로 형사사법에 장애가 초래돼선 안 된다는 말이다. 그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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