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도 너무 넘었다
시민일보
siminilbo@siminilbo.co.kr | 2025-10-29 11:29:09
시상수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장
건강관리를 위해 조깅을 시작했지만, 3일 만에 포기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을 또 한 번 실감했고, 그렇게 나는 또다시 내 결심에 실망했다. 결심 후 약 3일 전후는 의지력이 꺾이기 쉬운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를 성공적으로 넘기면 좋은 습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심리학자들은 새로운 결심이 뇌의 각성 호르몬을 자극해 의욕을 높이지만, 그 효과는 보통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후 찾아오는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결심을 무너뜨리고, 사람은 다시 익숙한 습관으로 돌아가려 한다.
결국 이 짧은 시기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관건이다. 결심은 일상 속에서도 쉽게 꺾이지만, 진짜 문제는 그 이후의 ‘관리’다.
이처럼 결심이 무너지는 지점을 버티는 힘이 관리이며, 소방안전관리 역시 그런 꾸준함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화재가 발생하면 연소열에 의해 뜨거운 기류가 천장으로 퍼진다. 이를 “천장제트흐름(ceiling jet flow)”이라 한다. Alpert의 연구(화재실 천장부 열기류의 온도와 속도를 정량화한 경험식)에 따르면, 천장 아래 열기류의 속도와 온도는 화재실 높이와 화원 상층부 중심으로부터의 거리 비에 따라 달라지며, 일정 지점을 기준으로 급격히 약해진다. 구체적으로 화원 중심 직상부 천장에서 화재실 높이의 약 15% 지점에서는 속도의 변곡점(큰 변화가 일어나는 거리)이, 18% 지점에서는 온도의 변곡점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화재실 높이가 3m라면, 불꽃이 발생한 상부의 천장 반경 0.5m 인근의 범위를 벗어나면 열기류의 속도와 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스프링클러 헤드나 감지기가 제때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화재안전기술기준을 살펴보면 스프링클러 헤드의 수평거리는 일반적인 경우 2.3m 이하로 규정되어 있다. 이는 Alpert식이 제시하는 감열반응의 이론적 한계거리보다 훨씬 넓은 범위로, 열기류 감지의 최적 값 보다 느린 대응을 전제로 한 설계다. 쉽게 말해, 현행 기준은 이론적으로 가장 빠르게 감지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설정이다.
물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현실적인 시공비와 구조적 제약, 감지기의 감도 향상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기술적 한계와 제도적 현실 사이에는 반드시 ‘관리’라는 완충지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설비가 완벽하지 않다면, 사람의 책임이 그 빈틈을 메워야 한다.
Alpert식에 근거해 화염 열기류에 따른 온도 변곡점과 스프링클러 헤드의 설치에 대한 관계를 시각화한 것이 〈그림 1〉이다.
다만 현실은 그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화재예방법에 따르면 소방안전관리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므로 반드시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을 갖춘 사람을 선임해야 한다. 설령 소방시설관리업자에게 업무를 대행시킨 경우라도, 선임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2일간의 강습교육, 즉 실무능력 습득을 위한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소방안전관리자 미선임에 해당되어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즉, 법이 허용한 것은 ‘조건부 선임’일 뿐이다.
본디 자율소방안전관리체계는 시설과 사람 모두의 안전을 전문성을 가진 소방안전관리자가 책임지는 구조다. 그러나 전문 관리업체가 시설을 대신 관리하더라도, 건축물의 소방안전관리자가 무자격자라면 제도의 취지는 껍데기만 남는다. 법이 허용한 ‘조건부’를 ‘무조건’으로 바꾸는 순간, 소방안전관리의 변곡점을 넘어도 너무 넘은 셈이다.
Alpert식이 말하는 감열 한계거리를 넘어가면 스프링클러 헤드나 감지기가 제때 반응하지 않거나 반응하지 못하듯, 제도의 한계선을 과도하게 넘는 순간 안전관리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시설의 불완전성을 사람이 채워야 하지만, 그 책임이 제도의 허점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질 뿐이다.
기술과 제도는 한계를 가진다. 그러나 사람의 책임은 그 한계를 넘어야 한다. 설비의 불완전함을 사람이 채우지 못할 때, 그 한계는 화재의 경계가 아니라 참사의 출발점이 된다.
변곡점에서 멀지 않은 범위에서, 소방안전관리 업무대행 제도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 기준을 너무 멀리 잡으면, 아니 잡은 만 못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관리의 본질은 설비가 아니라 사람이다. 기술과 제도는 도구일 뿐, 그것을 작동시키는 것은 결국 사람의 책임이다.
변곡점을 지난 제도가 다시 살아나려면, 사람의 책임이 먼저 심폐소생 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소방안전은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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