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 멈춘 손학규, 안타깝다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2-01-27 11:55:10

  주필 고하승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27일 대선 행보 중단을 선언했다.


애초부터 당선을 바라고 출마한 것은 아니었으나 돈도 조직도 없이 무소속으로 대권 도전을 선언한 이후 그는 높은 벽을 절감했을 것이다.


패권 양당 후보에 쏠린 언론의 관심으로 인해 그의 목소리는 그 어느 곳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의 무능과 독선을 바라보면서 제왕적 대통령제가 더 유지 되어선 안 된다는 그의 절절한 목소리는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어쩌면 그는 대한민국의 선거제도와 풍토에선 처음부터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너무나도 깨끗한 사람이다. 정치 신사이자 선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에서 ‘깨끗한 정치인’은 좋은 상품이 아니다.


MB(이명박)는 경선 때부터 BBK 의혹으로 집중 공격을 받았으나 결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형수 쌍욕’ 등 온갖 추문을 달고 다녔지만, 결국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했다.


후안무치(厚顔無恥)한 그들이 경선에서 승리하거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게 대한민국의 정치 풍토다. 그에 비해 손학규는 너무나 도덕적이다.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여야 하는 현실 정치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이철희 정무수석이 정치평론가로 한참 주가를 올릴 때 JTBC '썰전'에 출연, "손학규 전 대표는 내가 아는 정치인 중 대통령을 하면 가장 잘할 것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선출직이다. 선거 과정에서 온갖 험한 일을 겪어야 할 텐데 그러기엔 이분이 너무 젠틀하다“라고 평가한 것은 이런 연유다.


그리고 손학규는 능력 있는 지도자이지만, 불행하게도 일반 국민은 그걸 잘 모른다.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성과는 초라했다. 사실상의 실업률은 정부의 공식 실업률보다 2배 많은 8% 정도로 치솟았다. 특히 2030 청년층은 4명 중 1명 이상이 사실상 실업 상태다. 만일 손학규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그가 말하던 ‘저녁이 있는 삶’, 즉 온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경기도지사 재임 파주 디스플레이 단지, 판교 테크노밸리 등 첨단산업을 유치하고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만들어 무려 74만 개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적 같은 업적을 남긴 바 있다. 그때가 경기도민들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일자리로 일자리를 늘린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대통령감 1위’로 꼽고 있다.


실제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정치인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법한 국회 보좌진들이 그를 차기 대통령감 1위로 꼽은 일이 있었다.


한국기자협회가 창립 42주년을 기념해 회원 기자들을 대상으로 ‘언론 자유와 발전에 가장 적합한 대선 주자’ 조사한 결과 역시 손학규가 1위에 올랐었다.


뿐만아니라 국회 출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감 조사한 결과에서도 손학규가 당당히 1위를 차지했으며, 시사 주간지 <뉴스메이커>가 지령 600호 기념으로 ‘정치부 기자·교수·국회의원 등이 선호하는 대선 후보감’ 조사에서도 압도적 1위를 차지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통령 선거는 정치를 잘 아는 전문가들이 뽑는 게 아니라 일반 국민이 뽑는 거다.


그런데 일상에 바쁜 국민은 후보들을 세밀하게 관찰할 여유가 없다.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표피적인 것만 가지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패권 양당제에서 무소속 후보에게 누가 관심을 주겠는가.


결국, 그는 대선 행보를 멈출 수밖에 없었고, 국민은 좋은 대통령 후보감을 한 사람에 잃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제 폐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죽는 날까지 광야에서 ‘제7공화국 건설’을 외칠 것이다. 정치인 손학규의 행보는 여기에서 멈출지 모르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 그는 세례요한처럼 바른 소리를 낼 것이다. 기왕이면 무능과 독단으로 일관한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는 일에 힘을 보탰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침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잘 알고 청와대 축소 등의 공약을 발표한 만큼, 함께 새로운 7공화국을 열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다만 항상 그를 존경해 왔던 한 언론인으로서 지금은 잠시 휴식을 취하시라고 권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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