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신드롬 속 ‘불편한 진실’… K-북, 해외 인기 성장세 꺾였다”
한국출판학회 정기학술대회, “K-콘텐츠 중 출판물만 인기 상승폭 둔화” 냉철한 진단
박세현 대표 “막연한 낙관론 경계해야… 웹툰·드라마와 달리 성장 동력 약화 뚜렷”
위기 돌파구로 ‘철저한 현지화’와 ‘전문 인력 양성’ 시스템 제안
김민혜 기자
issue@siminilbo.co.kr | 2025-12-02 12:31:16
이번 학술대회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한국 출판물의 해외 인기 둔화라는 냉철한 통계 지표를 근거로 K-북의 위기를 진단하고 생존 전략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첫 번째 발표를 맡은 박세현 팬덤북스 대표(한국만화웹툰평론가협회장)는 한국 문학 저작권 수출의 현황과 글로벌 시장 구조 발표를 통해 축포를 터뜨리고 있는 국내 분위기와 상반되는 해외 시장의 데이터를 공개해 주목받았다.
박 대표는 “노벨상 효과로 국내 소설 판매량이 전년 대비 약 22% 급증하며 호황을 맞았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해외 시장에서의 지표는 경고등이 켜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가 제시한 해외 한류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드라마나 웹툰 등 타 K-콘텐츠의 대중적 인기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동안, 한국 출판물의 인기 증가폭은 최근 5년 사이 급격히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24년 기준 한국 문화콘텐츠 경험률 조사에서 출판물은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어, 낙수 효과가 예상보다 미미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박 대표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웹툰 웹소설 플랫폼과 같은 강력한 IP 확장 주체의 부재, 국가별 권역별로 세분화되지 못한 장르 포지셔닝의 실패를 꼽았다. 그는 해외 독자들은 막연한 순수 문학이 아니라 업마켓 소설(Upmarket Fiction)과 같은 명확한 장르적 색채를 원한다며, 장르 전문화와 미디어 믹스 전략 없이는 현재의 정체기를 돌파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이어지는 발표에서는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무 해법들이 제시되었다.
박혜지 도서출판 혜지원 편집장은 번역과 편집 현지화 전략을 주제로, 단순 번역을 넘어선 문화적 현지화(Localization)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박 편집장은 실제 수출입 계약 현장에서 겪은 사례를 들며, “일본 책의 시바견 역사를 한국 정서에 맞춰 진돗개로 변경하려 했으나 원작자의 동의를 얻지 못해 계약이 불발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언어적 변환을 넘어 문화적 맥락까지 현지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치밀한 전략이 수반되지 않으면 수출 계약은 성사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정미 글로벌이민통합연구소 소장은 전문인력 양성의 필요성과 교육 모델 발표에서 인적 인프라의 붕괴를 우려했다. 이 소장은 “현재의 K-문학 성과는 시스템이 아닌 우연히 등장한 걸출한 개인(작가)에 의존한 결과”라고 꼬집으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번역가 개인에게 모든 짐을 지우는 구조를 탈피해, 기획 저작권 마케팅을 아우르는 전문 인력 양성 시스템을 국가 차원에서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이날 본 행사에 앞서 열린 제19회 출판전공 대학원 우수논문 발표회에서는 디지털 시대 종이책의 균형자적 가치를 조명한 이선주(성신여대 석사) 씨와, 콘텐츠 서비스 품질 요인을 분석한 홍태형(경희대 석사) 씨의 논문 발표가 진행되었다.
행사 말미에는 제46회 한국출판학회상 시상식이 열려 학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들을 치하했다. 연구부문 수상자로는 노병성 협성대학교 명예교수(한국출판학회 고문)가 선정되었으며, 경영부문상은 허보욱 비상교육 콘텐츠컴퍼니 대표가 수상했다. 특별공로상은 윤광원 미래엔 부사장에게 돌아갔다.
한국출판학회 관계자는 이번 학술대회는 한강 신드롬이라는 호재에 취해 자칫 놓칠 수 있는 성장 둔화라는 뼈아픈 현실을 직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제시된 장르 다변화와 현지화 전략이 K-북의 재도약을 위한 실질적인 로드맵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