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분위기보다 내용이 중요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5-08-26 13:42:51

  주필 고하승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 후 브리핑에서 “시종일관 화기애애하게 서로에 대한 호감과 신뢰를 쌓는 시간이었다”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을 칭찬했다”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전 SNS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마치 숙청이나 혁명이라도 일어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을 할 수는 없다”라고 글을 올리며 긴장감을 유발했는데 회담 분위기가 ‘화기애애’ 했다니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분위기가 아니라 내용이다.


물론 이 대통령은 회담의 결과가 아주 좋았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을 마친 뒤 존 햄리 소장과의 대담에서 이 대통령은 아주 밝은 표정으로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양해하고, 격려받았다"라고 했다.


무엇을 양해받았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마치 미국이 많은 것을 양보해 주었다는 뉘앙스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결이 다르다.


트럼프는 "한국이 합의와 관련해 약간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우리의 입장 고수했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한국 정부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미국이 대체 어떤 요구를 했고, 합의한 내용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우리가 관심을 가졌던 철강, 알루미늄 등의 관세는 어떻게 되는지 아무런 얘기가 없다.


미국은 지난 3월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6월부터는 50%로 상향 조정했다. 미국의 고율 관세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지난달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이 1년 반 만에 20만 톤 아래로 ‘뚝’ 떨어졌다.


어디 그뿐인가.


농축산물 개방 수준이 어떻게 되었는지 국민이 무척 궁금해하는 데도 거기에 대해선 아무런 답변이 전혀 없다.


정상회담 분위가 화기애애했다는 점은 다행이나,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우리가 많은 것을 포기했다면 이건 정말 참사 중의 참사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트럼프는 정상회담에서 현재 미국이 빌려 쓰고 있는 주한 미군 기지 부지의 소유권을 요구할 수 있다는 취지로 언급했다는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트럼프가 언급한 요새는 아마도 경기 평택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일 것이다.


캠프 험프리스는 미국의 해외 주둔 기지 중 단일 기지로는 세계 최대규모로, 여의도(약 290만㎡) 5배 면적인 약 1467만㎡에 달한다. 과거 서울 용산과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미군 부대를 이전해 통합한 곳으로, 약 100억 달러(약 14조 원)인 주둔비용과 기지 건설 비용 중 90% 이상을 한국 정부가 부담했다.


이것을 미국이 소유하겠다는 건 언어도단이다. 대한민국 헌법상 영토 일부를 외국에 양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하다. 설사 이를 검토하더라도 국회 비준 등 절차를 거쳐 양국 간 맺고 있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을 전면 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SOFA 등 양국 간 협정에 따르면 미군 기지의 경우 한국 측의 부지를 공여하고 미군은 운영 주둔 및 운영 목적의 사용권만 갖도록 한다. 주한미군 모든 기지는 한국이 소유권을 가지며 미국은 사용권만 행사하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의 모든 미군 기지도 사용권만 행사하는 구조다. 트럼프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이런 요구를 했다는 건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을 노린 협상용 레토릭일 것이다. 즉 한국이 자신의 요구대로 분담금 10배 인상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예 소유권을 이전받겠다는 우회적 압박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어떻게 답변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회담 분위기가 좋았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다. 내용이 나쁘면 아무리 분위기가 좋았더라도 ‘외교 참사’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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