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가 끝이 아니다! 시니어탐정, 인생 2막의 주인공
시민일보
siminilbo@siminilbo.co.kr | 2025-05-07 14:01:32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 중 하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에는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이미 은퇴중이며, 수십 년간 전문성과 실무 경험을 쌓아온 전문가들이 갑작스러운 '일자리 단절'을 맞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묻는다. 은퇴는 정말 끝인가?
최근 '시니어탐정'이라는 새로운 직업 영역이 고령사회의 가능성을 여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단순한 노후 일자리 창출을 넘어, 고령층의 인생 2막을 의미 있게 설계할 수 있는 전문적이고 공익적인 진로다. 시니어탐정은 '경험 기반의 지적 노동'을 수행한다. 퇴직 공무원, 경찰·군 경력자, 법률·의료·보험·교육 분야에서 다양한 전문가들이 축적한 경륜을 바탕으로 민간조사, 분쟁조정, 실종자 탐색, 범죄예방 컨설팅 등에서 활동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고령층 대상 범죄 대응 영역에서 시니어탐정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다. 디지털 문해력이 부족한 노년층을 노리는 보이스피싱 등의 사이버금융범죄 예방, 노인 요양시설 학대 사례 조사, 부동산 사기 사전 탐지 등에서 동년배의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시니어탐정이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의료·복지 분야 경력자는 노인학대 조사에, 퇴직 경찰은 실종자 수색에 기존 네트워크와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직업은 단순한 '재취업'이 아니다. 시니어탐정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에 공익 정보를 제공한다. '공익탐정(Public Interest Investigator)'의 개념으로 시니어는 시민사회의 핵심 주체가 될 수 있다. 지자체 예산 감시, 사회적 약자 지원, 지역 안전 취약점 발굴등은 공익적 가치와 시니어의 전문성이 만나는 접점이다.
해외의 경우 이미 이런 흐름이 구체화되어 있다.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는 은퇴자 비율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전직 FBI, 경찰관, 법조인들 중심으로 탐정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Senior Investigator'라는 직함은 특정 국가만의 제도가 아닌,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명칭이다. 이는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 복잡한 사안 처리 능력을 갖춘 전문가를 의미하며, 많은 국가에서 은퇴 전문가들의 사회 재참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공인탐정법' 제정으로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현재는 경비업법 상의 신변보호나 민간 심부름센터 형태의 유사 서비스만 있어, 법적 지위와 업무 범위가 불명확하고 전문 시니어들의 진입장벽이 높다. 공인탐정법이 제정되면 퇴직 전문가들이 자신의 경력을 살려 새 진로를 개척할 수 있다. 특히 일정 경력 이상 전문직 종사자에게 자격 취득 요건을 간소화하는 '경력 인정 제도'를 도입한다면 시니어 인재 유입이 촉진될 것이다.
시니어 맞춤형 교육과정도 필요하다. 필자가 있는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는 유일하게 4년제 탐정학사 학위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와 수원대 등 일부 대학교에서 탐정전공 석사과정을 개설하고 있으나, 시니어 맞춤형 교육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기존 경력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 온-오프라인 혼합 학습, 현장 기반 실습 등 유연한 교육 모델이 개발되어야 한다.
고령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문제는 '일할 사람 부족'이 아닌 '활용되지 못하는 인적 자원'이다. 시니어탐정은 이러한 자원 활용의 대표 사례가 될 수 있으며, 인생 후반기의 사회적 기여와 자아실현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직업모델이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 고령층의 경제적 자립, 전문 인력의 활용, 세대 간 지식 전수, 공동체 의식 강화 등 다양한 사회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제는 시니어의 삶을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의 주체로 보는 전환적 시각이 필요하다. "탐정은 젊어야 한다"는 편견을 넘어, "탐정은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정착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니어 대상의 탐정 교육, 국가인증 민간조사 자격 제도, 공익 탐정 활동의 제도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탐정'이라는 직업은 영화 속 허구가 아닌, 고령사회의 전문가들에게 열린 현실적 대안이다. 인생 100세 시대, 시니어탐정은 평생 쌓아온 전문성을 사회 안전망으로 환원하는 가치 있는 여정이다. 우리가 시니어를 '부담'이 아닌 '자산'으로 인식할 때, 고령화는 위기가 아닌 대한민국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이다.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 주임교수 ▲경찰학박사 ▲前총경,前대통령실 행정관 ▲K-탐정단장, K-탐정연구소장 ▲공인탐정 및 공인탐정법 등 민간조사업 관련 논문·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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