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 보선, ‘승자의 저주’ 되나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3-10-11 14:08:14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는 정당은 고통을 줄이려 아편 처방을 받은 환자처럼 될 수도 있다.
조금은 고통스럽더라도 병의 원인을 찾아 근본적인 치유를 해야 하는데 손쉬운 아편에 의존하다가 생명을 잃는다면, 그 처방은 약(藥)이 아니라 독(毒)이다.
그런데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는 정당은 승리에 도취 돼 변화를 거부하고 되레 극단적 강성 지지층에 끌려다니는 퇴행적 모습을 보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보선 승리가 내년 총선에서 악재로 작용하는 셈이다.
사실 이번 선거를 ‘총선 전초전’으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
기초자치단체는 현재 전국에 226개가 있으며, 그 가운데 고작 한 지역의 기초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에 불과한 탓이다. 따라서 패배하면 당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반대로 승리했다고 해서 당 지도부에게 너무 큰 힘이 실리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도 승리한 정당의 지도부는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며 승리에 도취 되고 말 것이다.
마치 아편을 맞은 환자가 결국 중독돼 아편에 의존하게 되는 것처럼 현실에 안주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말이다.
먼저 여당의 상황부터 살펴보자.
여당은 이번 보선에 ‘귀책사유’를 이유로 무공천 했어야 옳았다. 아무리 김태우 후보자가 ‘공익 제보자’라고 해도 여당은 그런 겸손한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래야 내년 총선에서 국민은 여당에 호감을 느끼고 표를 줄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승리한다면 여당은 더욱 기고만장할 것이고 내년 총선에서 민심을 헤아리기는커녕 힘 있는 몇몇 특정세력의 입김이 작용한 불공정한 공천을 자행할 것 아니겠는가. 그게 총선에서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는 불 보듯 빤하다.
민주당의 상황은 어떤가.
만일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당의 귀책사유를 무시한 공천에 따른 반사이익에 불과할 뿐이다. 비교적 흠결이 적은 진교훈 후보를 공천한 것도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이, 특히 이재명 대표가 선거 승리에 어떤 역할을 한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당 대표가 진교훈 후보의 표를 깎아 먹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런데도 승리하면 민주당은 최악의 사태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체제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고, 이른바 ‘수박 축출’을 요구하는 개딸들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양심에 따라 이재명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을 색출하는 작업 또한 본격화할 것이고, 그들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일도 버젓이 자행될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실 이재명 대표는 지금 정상적인 당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위증교사혐의 등 일부 범죄에 대해서 소명됐음에도 당 대표라는 특수한 위치에 있는 탓에 구속영장이 기각됐지만, 범죄 혐의가 너무 많아 매주 법정에 출석해 재판을 받아야 한다. 검찰이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다.
통상 이런 지경이라면 누구라도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게 맞다. 그런데도 이재명 대표는 물러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심지어 ‘옥중공천’ 이야기까지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보선의 승리는 이런 이재명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은 ‘민주 정당’이 아니라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방탄용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문제는 그런 방탄 정당이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필자가 이번 보선을 ‘승자의 저주’가 내린 선거로 보는 이유다.
물론 저주를 피하는 부적(符籍)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여야 지도부 모두 지금부터 뼈를 깎는 변화의 고통을 기꺼이 인내하고 그 길을 가면 된다.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현재 여야 당 지도부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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