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영남당’이라니…

고하승

gohs@siminilbo.co.kr | 2023-10-17 14:44:06

  주필 고하승



“수도권 위기론을 수습하라고 했더니 ‘도로 영남당’으로 돌아갔다.”


이는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출범시킨 ‘2기 체제’에 대한 당 안팎의 평가다.


사실 이번 보궐선거는 당의 ‘투톱’인 대표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가 수도권의 민심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영남권 출신 인사들이기 때문에 참패했다.


만일 당 대표나 원내대표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수도권 민심을 파악하고 있었더라면 ‘귀책사유’를 이유로 ‘무공천’을 강하게 주장했을 것이고, 이런 후폭풍은 없었을 것이다.


뒤늦게나마 김기현 대표가 선거패배 직후 수도권 인사들을 전면배치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럽쇼?


총선 공천에서 핵심적인 당무를 수행하는 사무총장마저 영남권 인사를 임명하는 황당한 인사를 단행하고 말았다.


이는 국민의힘 스스로 ‘영남 지역당’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꼴이다.


지금 위기의식을 느낀 김선동 서울시당위원장과 송석준 경기도당위원장, 배준영 인천시당위원장이 ‘수도권 시도당 연대’를 선언하고 함께 필승전략을 모색하고 있다고 들었다.


김기현 대표는 이번 임명안을 발표하기 전에 적어도 그들을 함께 불러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옳았다. 그런 과정이 있었다면 ‘도로 영남당’으로 회귀하는 이런 터무니없는 인선을 없었을 것 아니겠는가.


수도권은 여당에 험지다.


경기도 지역구 59개 가운데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승리한 곳은 고작 6개에 불과하다. 서울도 49개 지역구 중 국민의힘이 승리한 지역은 9개 구뿐이다. 그나마 인천은 형편이 조금 나아서 13개 선거구 가운데 6곳을 차지했다.


반면 여당 텃밭인 영남에선 국민의힘 공천이 곧 당선이다.


그곳에서 손쉽게 금배지를 단 사람들은 그것으로 이미 충분히 당의 혜택을 받은 셈이다. 경쟁력이 현저하게 뒤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든 여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영남지역이다.


그런데 영남권 인사를 사무총장에 임명하면서 ‘지역 안배’ 차원이라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영남권 의원들은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인식되는 곳에서 손쉽게 금배지를 단 것에 만족하고 욕심을 내려놔야 한다. 정당인으로서 그보다 더 큰 혜택이 어디 있겠는가.


현재 임명된 사무총장 개인적인 성품이나 성향 능력 같은 건 잘 모른다. 그 개인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다. 설사 영남에 앉아서도 수도권 동향을 살필 수 있는 천리안과 같은 아주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더라도 이건 답이 아니다.


‘탈영남 자민련’을 선언해야 할 시점에 ‘도로 영남당’이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대안이 없다는 말도 변명에 불과하다.


왜 현역 의원들만 대안인가.


수도권에는 원내보다 원외 인사들이 훨씬 더 많다. 어떤 면에서는 수도권에서도 강남 3구 등 여당의 꽃밭으로 분류되는 지역의 현역 의원들보다 강북권에서 어렵게 승리한 경험이 있는 능력자가 더 필요한 시점이다.


비록 때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122개 지역구가 있는 수도권에서 또 참패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국정 동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사건건 야당에 발목 잡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건 국가의 불행이자 국민에게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세계 경제가 위기다. 그로 인한 대한민국의 경제 역시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롭기 그지없다. 국민의 삶은 어려워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는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총선마저 패배한다면 윤석열 정부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기현 대표는 그 책임을 어찌 감당하려는 것인가.


단순히 정계 은퇴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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