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예산 47조 원, 절반은 엉뚱한 곳에 쓰여 착시효과 개선을
시민일보
siminilbo@siminilbo.co.kr | 2024-06-19 14:53:58
저출생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 가운데 절반은 문제 해결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엉뚱한 데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 결과 지난해 저출생 대응 예산으로 47조 원을 썼지만 그중 절반은 저출생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과제에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요구가 큰 일·가정 양립 지원 예산 비중은 4.3%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18년간 38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저출생 대응에 쏟아부었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정부 정책의 ‘민낯’이 아닐 수 없다.
KDI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 6월 11일 서울 전경련회관에서 개최한 ‘저출생 예산 재구조화 필요성 및 개선 방향’ 세미나에서는 이 같은 분석이 제기됐다. KDI가 지난해 저출생 대응 예산 사업을 분석한 결과 최종 목표가 출생률 제고와 연관성이 높지 않은 사업이 전체 142개 사업 47조 원 중 40.8%인 58개 사업 23조 5,000억 원(50%)으로 절반에 달했다. 목적이 지나치게 포괄적인 세부 사업이 저출생 대책에 포함돼 있던 점이 지금까지 저출생 대응 사업의 성과가 낮은 핵심 원인으로 분석됐고, ‘백화점’식이던 저출생 예산의 전면 재구조화를 통해 최적의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출생과 직결된 예산 중에서도 양육 관련 분야에만 20조 5,000억 원(87.2%)이나 집중된 데 반해 정작 효과가 크고 부모들의 요구가 많은 일·가정 양립 분야는 2조 원(8.5%)만 지원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부풀려진 저출산 과제·예산을 정리하고, 연관성이 큰 정책과제에 예산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 초저출생의 시급성과 예산 제약 등을 고려할 때 20조 원 이상 투입된 주거 지원은 비중을 줄이되, 저출생 극복에 효과적이라고 인식되고 있는 ‘일·가정 양립’과 ‘돌봄·양육 지원’에 비중을 늘리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또한 출산율을 높이려면 육아휴직 사용률과 청년 고용률을 높여야 한다. 지난 3월 18일 고용노동부가 개최한 ‘일·생활 균형 정책 세미나’에서 기조 발표를 한 황인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연구실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을 분석한 결과 2019년 기준 한국의 연간 육아휴직 실제 이용 기간은 10.3주로, 한국을 제외한 34개국 평균인 61.4주의 6분의 1 수준에 그쳤다면서 육아휴직 기간을 OECD 평균만큼 늘리면 출산율이 0.096명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또 청년층(15~39세) 고용률이 한국이 58.0%, 34개국 평균은 66.6%인데 고용률을 OECD 평균만큼 높이면 출산율이 0.119명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육아휴직 사용률과 청년 고용률 제고로 출산율을 약 0.2명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효성 있는 저출생 대책은 실효성 있는 예산의 편성과 집행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따라서 저출생 대책과 직접 관련이 없거나 효과가 미흡한 정책의 예산은 과감히 도려내고, 효과가 있는 정책에는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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