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 이태원 참사 늑장 대처 경찰에 '격노'
이영란 기자
joy@siminilbo.co.kr | 2022-11-02 15:37:32
[시민일보 = 이영란 기자] 경찰이 ‘이태원 참사’ 발생 약 4시간 전부터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 신고를 11건이나 접수했지만 제대로 된 현장 대응을 하지 않은 등 늑장 대처한 사실이 드러난 데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크게 격노했고 참모진들도 '경찰을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여 주목된다.
이에 대해 한덕수 국무총리는 2일 “조사가 끝나는 대로 상응하는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경찰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안일한 판단이나 긴장감을 늦추는 일이 있다면 국민의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한 총리는 “국민 한분 한분이 112 버튼을 누를 때는 상당히 급박하고 경찰의 도움이나 조치가 절실한 경우”라며 “그 이면에는 언제든지 달려와 줄 것이라는 경찰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특별수사본부와 감찰을 통해 철저히 조사하고, 국민께 투명하고 소상하게 설명해 주시기 바란다. 112대응 체계의 혁신을 위한 종합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전날 경찰청은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이태원 일대에서 신고 접수된 11건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당일 오전 9시부터 참사가 난 밤 10시15분까지 이태원 파출소가 처리한 122건 중 인파 방지와 관련한 신고다. 경찰은 11건의 신고 중 총 4건에 대해선 현장 대응에 나섰지만 나머지 7건은 출동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첫 신고가 접수된 시간은 오후 6시34분이었다. 자신의 위치를 이태원 해밀톤호텔 골목 인근 이마트24 근처라고 밝힌 신고자는 “골목이 사람들하고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다”며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거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파가 너무 많은데 통제 좀 해주셔야 할 거 같다”고 했다.
이후 또 다른 신고가 이어졌다. 오후 8시9분 다른 신고자는 “인원이 너무 많아 밀치고 난리가 나면서 넘어지고 다치고 있다”며 “이것 좀 단속해주셔야 할 거 같다”고 호소했다. 경찰은 “네, 저희가 확인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경찰 기록에는 “대상자들을 인도로 안내 후 종결”이라고 돼 있다.
이후 경찰 신고가 더욱 빗발쳤다. 내용은 더 다급해졌다. 오후 8시33분엔 참사 현장에 있는 술집 ‘와이키키’ 앞에서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사람들 지금 길바닥에 쓰러지고 너무 이거 사고 날 것 같은데”라며 “쓰러지고 지금 이게 통제가 안 된다”고 전했다. 통화 내용에 따르면 이 신고자는 일행의 휴대폰으로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을 경찰에 보냈다.
하지만 경찰은 근처 통행로에 경찰관이 배치됐다고 통보한 뒤 출동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사고 현장에 있었던 다수 목격자는 “사고 몇 시간 전부터 경찰들이 통행로에 있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오후 9시7분에 접수된 통화에서 신고자는 “만남의 광장이란 술집 쪽인데 여기 사람 너무 많아서 압사당할 위기에 있다”며 “선생님 여기 와서 xx(소음으로 확인 불가)해주셔야 된다. 사람 다 일방통행할 수 있게 통제 좀 부탁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그러나 “신고자에게 현장 상황을 설명한 후 종결” 처리했다.
오후 9시10분에 걸려온 전화에서 신고자는 “핼러윈 축제 중인데 상태가 심각하다. 안쪽에 애들 막 압사당하고 있다”며 상황을 다급하게 전했다. 경찰관은 “알겠다”며 “경찰관 출동해주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다.
오후 10시11분 이태원동 119-7, 정확히 사고가 난 지점에서 마지막 신고 전화가 있었다. 신고자는 “여기 압사될 거 같다. 난리 났다”고 호소했다. 녹취록에는 당시 뒤엉켜 신음하는 사람들의 비명도 담겨 있었다. 경찰관은 “경찰, 그쪽으로 출동할게요”라고 통화를 마쳤지만, 출동하지 않았다.
경찰청은 이날 녹취록을 공개한 뒤 “112 신고 녹취록을 공개한 것은 앞으로 뼈를 깎는 각오로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다수의 112 신고에도 왜 현장 근무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는지 감찰을 벌일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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