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학교, 평생학습 국가의 열쇠

시민일보

siminilbo@siminilbo.co.kr | 2025-09-09 15:41:22

  홍지연 경민대학교 총장 



우리 사회에서 전문대학교는 종종 ‘작은 대학’, ‘입시의 후순위 선택지’ 정도로 오해되곤 한다. 그러나 교육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전문대학교는 일반대학의 대체재가 아니다. 고등교육 체제 안에서 독자적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한 축이다. 직업교육과 평생학습의 거점, 지역사회와 산업현장을 잇는 가교로서 전문대학교의 책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전문대학교의 정체성은 ‘실천적 지식’과 ‘현장 적합성’이다. 일반대학이 보편적 학문을 강조한다면, 전문대학교는 ‘바로 쓸 수 있는 지식’을 길러낸다. 단순한 기능인 양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늘날 산업사회는 기술과 인문적 감수성을 함께 요구한다. 전문대학교는 현장성과 인간성을 겸비한 전문인을 길러내야 한다.

교육학자 존 듀이가 말했듯, 교육은 삶과 분리될 수 없고 경험 속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전문대학교야말로 그 ‘경험의 교육’을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장이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배우고, 동시에 병원과 기업, 문화기관에서 실습을 한다. 학습과 노동, 삶이 긴밀히 연결되는 것이다.
경민대학교는 ‘하이브(HiVE), 라이프(LiFE) 사업’을 근간으로 성인학습자 중심의 네 개 학과를 신설했다. 라이프케어학과는 고령사회 돌봄·복지·보건 인재를, 라이프테크학과는 디지털 전환 시대의 스마트기술 인재를 양성한다. 라이프콘텐츠학과는 영상·문화·디지털 콘텐츠 제작 역량을, 라이프서비스학과는 지역 기반 서비스 산업 인재를 키운다.

이 학과들은 기존의 청년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40~50대 성인학습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학업을 중단했던 직장인, 경력 전환을 모색하는 중장년, 새로운 삶을 설계하는 은퇴자들이 교실로 돌아왔다. 그 결과 정원은 안정적으로 확보됐고, 학습 지속률도 높게 유지됐다. 특히 일부 과정에서는 재직자 비율이 60%를 넘었다. 수업을 마친 뒤 직무 전환이나 창업에 성공한 사례도 이어졌다. 지역사회에서 긍정적 평가가 확산된 것은 당연하다. 대학이 단순한 학위 수여 기관을 넘어, 지역과 산업을 살리는 플랫폼이 된 것이다.

이 사례는 전문대학교가 더 이상 청년 취업률 지표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다. 전문대학교는 인구 구조 변화와 산업 재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사회적 책임기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반대학과 경쟁해야만 하는가. 답은 ‘아니오’다. 전문대학교가 성인학습과 직업교육, 지역 맞춤형 교육에 집중한다면 일반대학은 연구와 기초학문에 무게를 둘 수 있다. 기능적 분담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경민대학교의 라이프케어학과가 현장에서 돌봄 인력을 양성한다면, 일반대학의 보건·복지 관련 학과는 이론 연구와 정책 제안에 집중할 수 있다. 두 기관이 공동 프로젝트나 연계 과정을 운영한다면 현장성과 학문성을 아우르는 교육생태계가 만들어진다. 독일의 듀얼시스템처럼 직업학교와 기업, 연구기관이 함께 학생을 길러내는 모델은 이미 효과가 검증됐다. 한국에서도 전문대와 일반대가 연계한다면, 청년부터 중장년, 고령 세대까지 아우르는 다층적 교육체제가 가능하다.

이러한 성공을 전국적으로 확산하려면 몇 가지 정책 과제가 있다. 첫째, 성인학습자 중심의 재정지원 확대다. 전문대학교가 중장년 학습자를 유치하고 맞춤형 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 항목을 신설해야 한다. 둘째, 전문대학과 일반대학의 연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공동 학위, 연계 전공,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장려해 학문성과 현장성을 잇는 교량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지역 기반 특화 모델을 확산해야 한다. 지역소멸권 전문대와 수도권 전문대의 과제는 다르다. 지역별 산업·문화·복지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정책이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성인학습자의 신뢰성을 높이는 제도적 개선도 필요하다. 전문대에서 이수한 학점이 국가 자격이나 직무교육과 자연스럽게 연계되도록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전문대학교는 더 이상 ‘대학의 작은 버전’이 아니다. 평생학습 사회의 전환기에 전문대학교는 지역과 산업을 살리는 실천적 대학으로 거듭나고 있다. 경민대학교의 사례는 그 가능성을 입증한 성공 모델이다. 이제 정책은 전문대학교를 단순히 취업률로 평가하는 틀을 넘어야 한다. 성인학습자와 지역사회, 그리고 일반대학과의 상생 구조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진정한 평생학습 국가로 가는 길이며, 전문대학교가 수행해야 할 사회적 책무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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