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위해 모은 돈 꿀꺽··· 大法 "횡령죄 아냐"

'징역 6개월' 원심 파기
"보호할만한 위탁관계 아니다"

여영준 기자

yyj@siminilbo.co.kr | 2022-07-20 16:14:23

[시민일보 = 여영준 기자] 범죄의 준비·실행을 위해 여러 사람이 모은 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사람에 대해 횡령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51)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3년 1월경 피해자 2명과 함께 의료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 요양병원을 운영하기로 약정한 뒤, 두 사람에게서 투자금 2억500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당초 만들기로 한 협동조합은 세 사람의 갈등으로 좌초됐다. 이후 A씨는 투자금을 두 사람에게 돌려주지 않고 2억3000만원을 개인 빚을 갚는 데 사용했다.

1심은 A씨의 횡령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A씨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 재판에 앞서 A씨는 피해자 두 사람 중 1명에게서 2억2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사기)로 기소됐다가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는데, 재판부는 이 부분은 면소 대상이라고 보고 나머지 금액의 횡령 혐의만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투자자들 모두가 의료인이 아니기 때문에 비영리 협동조합을 설립한 뒤 요양병원을 설립·운영하며 수익금을 배분하기로 한 동업 약정은 의료법에 따라 불법 행위(범죄)이며, 무효라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의료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은 의료기관을 만들 수 있으나 개인이 의료기관을 세우려면 의료인이어야만 한다.

항소심은 다만 동업 약정 자체가 무효라고 해도 A씨로서는 투자자들의 출자금을 반환할 의무가 있으므로 개인 용도로 이 돈을 쓴 것은 횡령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반면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항소심이 유죄로 인정한 횡령죄 역시 무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규범적 관점에서 볼 때 범죄의 실행이나 준비 행위를 통해 형성된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며 이번 사건에서 금원의 교부가 의료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민사상 반환 청구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민사상 반환 청구권이 허용된다고 해서 무조건 형사상 보호 가치가 있는 위탁관계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투자금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자격이 없는 자의 의료기관 개설·운영이라는 범죄의 실현을 위해 교부됐으므로 A씨와 투자자 사이에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신임에 의한 위탁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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