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사명감 상실시대

고병돌(구로구청 문화공보과)

시민일보

| 2001-05-25 16:34:57

공직자들에게 사명감이 남아 있는가?는 질문에 머리를 갸웃거리는 공무원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어느 여론기관은 21세기에 들어와 대다수의 공무원들이 공직에 해이를 느끼고 있다는 조사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공무원들이 사명감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 그건 심각한 사회문제로, 아니 국가의 존립이 위태한 국가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공무원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가치관을 상실한다고 했을 때, 자신의 삶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시민을 만족시키기 위한 제대로 된 행정을 펼칠 수 있겠는가.

가치관의 혼돈시대에 오히려 종교는 번창한다는 말이 있다. 마음이 궁하면 유혹에 약한 법. 공무원들의 가치관이 흔들리면 법 집행이 올바로 서지 않을 것이 뻔하다. 작금의 사회적 무질서가 공직자들의 사명감 상실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하는 학자들도 있다.

과거 50∼60년대의 재건이 공직자들의 애국심에 기인됐으며, 70∼80년대의 잘 살아보자는 부흥운동이 박봉에도 굴하지 않고 허리띠를 졸라맨 공무원들의 사명감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어느 시대이건 공무원들이 선봉에 서서 사회를 위해 희생했기 때문에 이만큼의 현실이 있다.

이런 문제의 발단이 어디부터 시작되었는지 필자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정권이 바뀌면서 공무원들이 도마에 올라 희생양이 됐던 것도 사실이며, 민선 이후에 민선 단체장들의 잘 못된 관행과 민선 의원들의 토착비리 또한 공직사회를 멍들게 했던 요인이 됐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나름대로의 사명감은 있었다. IMF 이후에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은 공직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한 가닥 자존심마저 짓밟고 공무원들의 사명감을 앗아가 버린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공직자에게 사명감을 불어넣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국익에 준하여 생각할 가치가 있다. 공직이 바로 서야 법의 질서가 바로 서게 되고 작금의 무질서와 방종이 해소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명감을 불어넣으면 좋겠는가. 21세기는 디지털 시대이다. 그야말로 손가락 마디에 의거 모든 것이 움직이는 최첨단의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공무원들에게만 고통을 분담해달라고 말하면 씨알이 먹히겠는가, 마찬가지로 70∼80년대 쓰던 정신교육이나 몽둥이를 들어 해결되겠는가.

지금의 시대는 벤처기업 열풍이 일어 소년 재벌이 있는가 하면, 아이디어 하나로 수억을 끌어들이고, 능력만 있으면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직업과 직장을 갖는 정도이다. 공무원들에게 언제까지 금전적 열등감을 갖게 할 것인가. 21세기는 프로의 시대이다.

프로는 금전으로 보상받아야 하며 가치가 인정돼야 한다. 9급 공무원으로 들어와 13년을 근무한 사람이 한 달 평균 160만 원의 월급으로 생활한다. 늙으신 부모를 모시고 아내와 두 자녀가 있는 그의 생활은 도시 영세민의 생활 수준이다. 남들 다 보내는 학원에 제대로 보내지 못하는 공무원, 생활에 늘 허덕이며 만족하지 못하는 그에게서 무슨 사명감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부정을 저지르는 공직자는 현직을 당연히 떠나야 한다. 반면 깨끗한 공직자는 적어도 이 사회의 중류층이라는 긍지를 갖고 공직에 사명감으로 임하도록 배려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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