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인가
강남구청 사회진흥과 김순의
시민일보
| 2001-06-13 11:15:21
나는 지금의 내 자리에 얼마나 어울리는 사람일까?
매일 아침, 대모산을 左로 보며 양재대로를 지나온다.
봄안개에 잠긴 숲 사이로 언뜻언뜻 무리 지은 진달래, 이제 막 새순이 돋는 오리나무, 굴참나무, 은사시, 밤나무, 참나무, 포플러 나무들이 어우러진 숲의 총주(總奏) 교향곡은 감미로우면서도 한편 장엄하다. 그대로가 한 폭의 담채화(淡彩畵)다.
저 싱그러운 봄산과 달리 최근 나는 말할 수 없이 심란한 미로에 빠져있다. 난데없이 동창회 일을 맡아 바삐 뛰면서부터였는지 모처럼 기대를 건 여행의 끝이 명쾌하지 않아서였는지 분명치 않다.
요즘 부쩍 미운 사람이 늘어간다. 십 수년의 업무가 새삼 권태로 짓누른다. 합리적이라고 자부하는 내 판단이 왜 무시되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풀리지 않는지.
그런 가운데 신중히 생각하지 않고 내뱉은 말 한마디가 상대의 가슴에 비수로 꽂혀 한동안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기도 했다.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새로 산 것 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해 친구를 시켜 찾아오게 하는가 하면 급기야는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무엇이 나를 조급하게 했는지 하루하루가 원망일색이다. 직장일 조차 소홀해지고, 책꽂이에 두껍게 쌓인 먼지를 외면하고, 소풍 가기 전날 밤에서야 소식을 알리는 아이 또한 상심의 이유가 되었으니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스스로 질책해야 함에도 내게만 너그러웠다. 노여움이 많고 남을 인정할 줄도 모르고 칭찬하는데 인색했다.
내 위치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자식으로 엄마로, 아내로, 동료로 부하직원으로서 직장선배로서 과연 몇 점을 받을 수 있을까?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모든 속박으로부터 훨훨 자유롭게 벗어나게 할 아량의 묘약이라도 찾아 나서자.
그리하여 직장에서, 집안에서 이대로 앉아있어도 기울지 않게, 어색하지 않게, 내재된 은은한 향기를 지닌 내 자리에 어울리는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자. 저 연록의 새잎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자.
옆 동료와 차를 마시며 한때 소원했던 밉지 않은 동료를 고운말로 흉보고, 퇴근 후 아이로부터 새 학년이 되어 짝이 된 예쁜 여자친구 얘기도 듣자. 일상의 리듬을 안단테로 바꾸자. 느리게. 더욱 느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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