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천하

중랑구청 문화공보과 오미헌

시민일보

| 2001-06-13 11:17:23

신혼여행지였던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갈아탄 제주 관광 택시 안에서 짓궂은 택시 기사 아저씨로부터 정식으로 농담반 진담반 아줌마란 호칭으로 불려졌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그 소리가 마음에 걸리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여졌다.

모방송사 드라마 ‘아줌마’에서 보여졌던 주인공 ‘오삼숙’의 노예 같던 아줌마의 모습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혼과정에서 호주제 폐지, 엄마 성 물려주기 등의 문제를 실천하는 페미니스트로의 모습으로 변신을 보여줘서인지 이전에 지하철에서 자리를 발견하면 가방을 던지는 ‘아줌마’가 갖는 이미지가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요즘은 부모 성을 함께 쓰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어색하고 이상했는데 여러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확산되고 보니, 이제는 말보다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다.

시댁에 가서 첫날은 신랑과 함께 시어머니를 모시고 근처 병원에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진을 기다리면서 병원 게시판에서 ‘농가 도우미제도’라는 것을 읽었다.

출산 여성 농업인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라고 했다. 지역 특성에 부합하는 꽤 괜찮은 제도라는 생각을 했다. 또 집에서 TV를 보는데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 중에서 부모님과 배우자의 죽음으로 인한 스트레스 다음의 것이 육아에서 오는 스트레스라고 했다. 아줌마가 되고 보니 전에는 별로 관심 없었던 것들이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닌냥 눈과 귀에 들어온다.

최근에는 노동부에서 5월중에 모성보호 강조주간을 신설하여 출산·양육이 사회 공동 과제라는 의식을 확산시키고 육아휴직제도를 실시한 사업주에게 장려금 지원을 확대하여 실효성을 높일 방침이라는 신문 내용이 반갑기까지 하다.


내가 아는 요즘 아줌마들은 참 바쁘다. 구청에서 무료로 가르쳐주는 컴퓨터도 배우러 다녀야하고, 주민회관에서 스포츠 댄스도 접수하고, 소녀시절 꿈이었던 문학수업을 배우러 시간을 내시는 분들이 꽤나 많으시다.

어느 냉장고 광고에서 여배우의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카피가 마음으로 와닿지는 않지만 여성의 삶이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그렇다.

신혼여행 사진을 보면서 남편과 함께 웃는다. 신혼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한라산 등반이었다. 2002년까지 입산 금지기간이라 정상까지 가지는 못하고 윗세오름까지 갔다가 내려왔다.

한라산 그늘진 산자락에 잔설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봄이었건만 그 동토의 땅을 뚫고 새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참 대단한 힘이다. ‘아! 봄이구나’라는 감탄사와 함께 생각해 봤다. 동토의 땅을 뚫고 새싹이 올라오듯 희망이 올라오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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