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유적 관리소홀 ‘아쉬움’

성동구 옥수제1동장 조면구

시민일보

| 2001-06-13 20:30:33

사람이 사는 곳에 삶의 흔적이라 할수 있는 문화유적이 존재함은 당연한 일인데 근래 들어 그 자취들을 찾기가 어려움은 무척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문화유산들은 이민족의 침략, 일제 강점기와 무분별한 도시의 확산 등으로 인해 많이 사라지고 말았다.

컴퓨터에 익숙한 요즈음의 청소년들이 자기 고장의 역사와 발자취, 선조들이 어떤 삶을 일구며 살아 왔는지를 상상하기란 아예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린지도 오래다.

본인이 근무하는 성동구 옥수동(玉水洞)만 해도 터널이 뚫리고 도로가 확장·개설되고 낡은 주거지는 대단위 아파트촌으로 속속 변모해 가니 불과 2-30년 전의 일이 먼 옛날 얘기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옥수동은 매봉산을 진산으로 남쪽으로 한강을 낀 경관이 매우 수려하여 예부터 많은 유적과 일화가 남아있는 유서깊은 동네였다.

조선시대만 해도 한강의 수운을 이용한 포구가 있었기에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강마을이었다. 한강을 벗삼아 지내던 옥수동은 1960년대 이후 급속한 도시화로 인하여 옛 자취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얼음을 보관하던 동빙고(東氷庫), 선비들이 공부를 하던 독서당(讀書堂), 조선 익종의 비이며 헌종의 모후가 되는 조대비(趙大妃)의 생가, 한강변 언덕에 있던 유하정등 9개의 정자, 한강에 있던 모래섬인 저자도(楮子島) 등은 몇십년전 까지만 해도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정확한 터조차 알수가 없다.

동사무소에서는 최근 청소년들을 위하여 우리 동네의 역사와 옛 모습을 담은 조그만 책자를 만들었다. 책자를 발행하고 나니 청소년들의 반응이 의외로 대단하다.

늘 바라만 보던 한강이 우리 선조들의 삶의 터전이었다는 점과 우리 고장에 많은 역사유적이 있었다는 사실에 뿌듯한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 외에도 관리소홀로 현재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교차하는 모양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청소년들이 일상적인 교육의 현장에서 벗어나 자기 고장에 깃들어 있는 문화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는 동기들이 계속 부여되었으면 좋겠다.

곧 겨울방학이 되니 청소년과 함께하는 유적순례라던가 역사를 담은 자료집 발간, 문화유산 정보를 담은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도 좋은 방안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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