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 만드는 밝은세상
양천구청 재정경제국장 박정호
시민일보
| 2001-08-30 15:56:13
큰맘 먹고 모처럼의 휴가를 얻었으나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아 이번에도 가족과 함께 하는 휴가는 그림의 떡이 돼버렸다.
날씨조차 마음을 덥게 한다. 점심시간이 지난 6월의 오후는 온통 열기로 가득찼다. 땀을 뻘뻘흘리며 볼일을 보고 집에 가서 쉬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길동에서 112번 버스를 탔다. 마침 입구에 자리가 비어 있어 앉았다.
바로뒤에 40대 중반의 단정한 옷차림을 한 아주머니가 뒤따라 타더니 운전기사 옆쪽에 서서 운전기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듯 멈칫하더니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 버스비 안낼래요. 아침에 진흥아파트에서 타고 길동에 내리며 1000원짜리를 냈는데 금전기계가 고장나 500원을 거슬러받지 못하고 그냥 내렸고 그 버스도 112번이었다”는 내용이었다.
그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머리를 짧게 깍은 40대로 무뚝뚝하게 보이는 저 운전기사가 어떻게 대답할까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경험상 일반적으로 90%이상이 퉁명스럽고 거친 대답이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윽고 운전기사가 빽미러로 뒤를 흘낏보더니 한마디 말을 던졌다. “그냥 타세요”하더니 오히려 그 아주머니에게 현금통이 고장난 버스에 대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현금통이 고장이 나서 거스름돈을 주지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아주머니도 의외라는 듯 고맙다는 말을 하며 무척 기쁜 표정이었다. 운전기사가 혹시 돈을 내야된다고 할 경우를 생각했는지 아주머니는 왼손안에 500원 동전을 꼭 쥐고 있었다. 그다음 상황이 또한번 나를 기쁘게 했다.
아주머니는 손안에 꼭쥔 500원을 버스요금통에 넣는 것이 아닌가! 만약 운전기사가 반대로 이야기했다면 돈 500원으로 인한 말다툼이 크게 벌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승객들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빨리 그 버스에서 내리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 아주머니가 택시 기본요금 거리에 못미치는 정류장에서 내렸지만 그 짧은 시간에 버스안에 탔던 모든 사람들은 흐뭇해질수 있었으며 재물적인 가치는 비록 동전 500원밖에 안되지만 우리 모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차창너머로 지나가는 가로수들도 더욱 싱그럽게 보였다.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이 모두 이와같다면 세상살아가는 맛이 있을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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