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공동제작 연극 ‘보이체크’

사회억압에 무릎꿇은‘인간성’

시민일보

| 2003-01-06 17:32:50

사회적 억압으로 파멸에 이르는 개인을 그린 독일 사실주의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1813-1837)의 ‘보이체크’가 오는 14일-2월 2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 오른다.

외국 연출가와 국내 배우들이 함께 만드는 이례적인 형태의 공연이다. 예술의 전당이 ‘연극의 부활’을 염두에 두고 처음으로 해외 공동제작에 발벗고 나섰다.

스태프와 캐스팅이 화려하다. 연출자는 러시아의 차세대 연출가로 꼽히는 유리 부드소프(42). ‘고도를 기다리며’를 각색해 황금마스크상 최고 연출가상을 타는 등 최근 러시아 연극계가 주목하는 인물이다.

또 지난해 영화 ‘나비’로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청동표범상을 거머쥐며 스타덤에 오른 유호정을 비롯 장민호, 윤주상, 한명구, 박지일, 남명렬, 장현성 등 연극계의 ‘스타’들이 대거 참여한다.

원작자 뷔히너는 평소 품행이 나빴던 정부(情婦)를 일곱 번이나 칼로 찔러 죽인 이발사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주인공은 가난한 병사 보이체크. 정부 마리와 아이를 부양하려 하지만 돈이 없다.

돈을 벌기 위해 그는 한 의사의 실험대상으로 자신의 몸을 제공한다. 그 와중에 정부 마리는 군악대장의 유혹에 넘어간다. 절망에 빠진 보이체크를 중대장과 군악대장, 의사 모두가 조롱할 때 그를 찾아오는 살인충동.
결국 보이체크는 이성을 잃은 채 마리를 죽이고는 자신 역시 연못에 빠져 죽고 만다.


이 작품은 미완성인 데다 대사의 상징성이 강해 빈번한 재해석을 낳아왔다. 이때문에 연극 뿐 아니라 오페라, 무용, 마임 등 다른 장르로도 숱하게 공연됐다. 부드소프는 ‘가난과 불평등한 계급이 낳은 억압과 소외’라는 유물론적 해석 대신 ‘인간성 상실의 문제’에 주목한다.

부드소프는 “세상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얘기다. 가난하고 가련한 사람들의 내적 심성에 관한 얘기이면서 동시에 철학적인 얘기다. 원작은 억압-피지배로 나뉜 사회구조에 초점을 뒀지만 나는 인간적인 면모를 바라보려 애썼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양식면에서 종래 한국 연극과는 다를 것이란 기대를 품게 한다. “과거의 연극은 작가의 연극으로 대사가 중요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연출가의 연극이 되면서 새 언어가 필요해졌다. ‘신체 언어’나 ‘신체 메타포’는 그런 모색 결과 찾은 새 언어다.

현대는 신체연극의 시대다”라는 게 부드소프의 ‘현대연극관’이다. 대사나 표정이 아닌 ‘몸’의 연극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580-1300
/문향숙기자 cult@simi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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