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의 ‘살생부’
이영란 정치행정팀장
시민일보
| 2003-01-14 18:37:43
{ILINK:1} 정가에 내각제 공론화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기류를 보이고 있다.
애초 한나라당 일부에 의해 슬쩍 흘리는 식으로 거론되던 내각제논의가 “내각책임제를 거론할 때가 됐다”고 화답(?)한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발언이후 탄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감지된다.
한나라당은 당의 정강·정책에 내각제를 당 노선으로 명문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등 내각제 공론을 위한 세불리기에 발빠르게 나섰다. 뿐만 아니라 내각제를 당론으로 적극 지지의사를 밝혀왔던 자민련과 일부 민주당의 지지를 끌어들여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목표인 듯 싶다.
민주당 역시 한 대표 발언 이후 “대통령 선거 직후 새 정부가 출범하는 시점에 내각제 개헌을 거론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하다(신주류측)는 반대입장과 “이왕 거론된 만큼 논의하는게 바람직하다”(구·비주류 측)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등 물밑 신경전이 예사롭지 않은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권의 내각제 논의는 아무래도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순수하게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이미 대선 공약을 통해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하는 쪽에 권력을 가진 총리를 주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그럼에도 당선자의 임기를 2004년 총선 때까지 제한하겠다는 식의 내각제 개헌론을 서두르는 것은 이미 모양새 갖추기에서부터 실패한 셈이다.
정치권의 이같은 움직임이 정작 국민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실제로 내각제논의가 정치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정치편의적 발상’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식도 치르지 않았는데 이보다 먼저 나서 당선자 임기를 제한하고 내각제를 개헌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가 과거처럼 쉽게 유권자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유권자 수준의 변화 때문이다.
지금 국민들은 정치개혁이라는 대명제를 그럴싸하게 포장한 정치권의 내홍을 환하고 뻔하게 들여다볼 만큼 한 수 위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둘러댄다해도 이번 내각제 논의가 정치인들 스스로의 입지를 넓히고자 하는 주도권 싸움 이상의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혹여 오는 2004년 국회입성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관계자라면 지금 무시무시한 ‘공천 살생부’가 권력층이 아닌 유권자 사이에서 작성되고 있음을 주지해야할 것이다.
정치판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그냥 넘기지 않고 일일이 기억했다가 돌아오는 17대 총선에서 유권자의 본때를 보이고 말겠다는 각오도 함께 챙기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진정한 승리를 원한다면 구태정치의 폐단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국민을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이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언행을 일일이 점검하고 진실을 무기로 유권자 표심에 호소해야 할 때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