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과 눈 먼 돈

이영란 정치행정팀장

시민일보

| 2003-01-26 16:52:54

판공비와 관련된 7건의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중인 가운데 서울시내 상당수의 구청이 올해 또다시 판공비를 대폭 인상했다는 소식이다. 이에 대해 당연히 비난여론이 따르고 있다.

판공비 구설이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들의 ‘무대포식으로 밀어붙이는 예산책정 행태’는 할말을 잃게 한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판공비 정보공개 청구를 거절한 서울시와 25개 구청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시민단체가 이미 2심 째 승소하고 최종심을 남겨둔 상태며 그동안 무절제하게 낭비됐던 혈세를 되찾겠다는 납세자들의 권리찾기 의지가 충천해있는 때이기도 하다.

일부 지역 자치단체장들의 지난 판공비를 분석한 결과, ‘밥과 술’을 먹는데 사용된 판공비가 전체의 50%를 넘긴 금액이 집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더 기가 막히는 사실은 판공비 용처가 특정단체를 지원하는 격려 후원금 등에 집중된 반면 복지단체(불우이웃)에 사용된 판공비는 1% 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 현실이다.

이 뿐 아니라 ▲비서실 직원 챙기기 ▲개인적 용도의 각종 회비와 후원금 ▲여론동향 파악 및 정보수집 활동 ▲근거없는 선물이나 기념품 제작 ▲지구당이나 지방의원을 위한 선심성 집행 등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열리는 상임위원회 세미나라고 해서 따라나섰더니 2박3일 동안 강연은 2시간이고 나머지는 모두 놀자판이더라. 문제제기를 했더니 선배들도 다 그렇게 했다며 그대로 따르라고 하더라 “
서울시의회 한 초선의원의 고백이다.

이러한 사정은 기초의회라고 다르지 않다. 경기도 시의원 역시 “처음에는 판공비가 무엇인지 몰라 쓰지 않고 있었지만 뒤늦게 알고 관행대로 쓰기 시작했다”며 “돌이켜보면 잘못된 부분이 많다”고 고백했다.

“식비나 경조사비 명목으로는 쓸 수 있으면서도 정작 교체가 필요한 컴퓨터를 사려하자 판공비를 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업무추진비의 명목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위의 사례들은 판공비를 쓰는 측에서 혈세를 눈먼 공돈으로 전락시킨 현장의 소리다. 뭘 모르는 건가, 아니면 세상돌아가는 이치를 아예 무시할 만큼 배포가 두둑한 건가.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에는 저마다 주인이 존재한다. 돈 주인이 존재하는데 명분없이 돈을 쓰는 것은 명백한 절도행위다.

무엇보다도 당사자들의 현실인식이 필요한 것 같다. 과거와 다른 납세자의 투지를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된다. 그저 거부방침 운운하는 식으로 밀어붙이면 되던 과거를 기준으로 한다면 큰 코 다친다.

그렇지 않아도 민선시대에 접어들면서 각 단체장들의 선심행정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다.

행여 그저 구청장 이름이나 박힌 선물이나 안겨주면 된다는 식의 기준으로 판공비 인상을 감행했다면 반드시 재고해야할 필요가 있다. 한 순간의 판단부족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자초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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