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신간-은유로서의 질병
병든 몸‘낙인’찍는 현실 고발
시민일보
| 2003-02-03 17:24:05
“질병은 질병이며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다. 질병을 둘러싼 은유들은 어떤 질병에 낙인을 찍으며 좀더 나아가서는 질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어 놓는다. 내 책의 목적은 이런 상상력을 부추기기보다는 가라앉히는 것이다.”
미국의 예술평론가인 수전 손택(70)은 자신에게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안겨준 저서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에 대해 가하는 복수”라며 비평가들에게 투명성을 요구한 적이 있다.
이같이 경험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손택의 생각은 최근 번역 출간된 저서 ‘은유로서의 질병’(원제 Illness as Metaphor, 이후刊)에서도 확인된다. 손택은 이 책에서 신체, 특히 병든 몸에 가해지는 해석을 거부하고 있다.
손택은 “유대인이 국민들 사이에 인종적 폐결핵을 낳는다”는 히틀러의 말처럼 질병에 대한 은유가 질병과 질병을 앓는 환자에게 ‘낙인’을 찍는 현실을 겨냥하고 있다.
과거 결핵과 천연두, 암이 낙인 찍혔었고 ‘현대의 역병’으로 불리는 에이즈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실제로 프랑스의 극우주의자 르팽은 지난해 총선에서 “에이즈 같은”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정적들을 물리치는 데 톡톡히 재미를 봤다.
손택은 “어원학적으로 보면, 환자는 고통을 받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환자들이 가장 깊이 두려워하는 것은 고통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하한다는 고통이다”라고 지적한다.
질병을 둘러싼 은유는 환자들이 불필요한 고통을 겪게 하고, 자신들의 질병에 혐오감과 수치심을 느끼도록 만든다. 결국 환자는 조기치료 혹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된다.
또 손택은 “나는 병을 앓고 있는 나머지 공포에 질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질병은 질병일 뿐이라고, 질병은 저주도 아니며 신의 심판도 아니고 곤혹스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권유한다.
손택은 76년 암 판정을 받은 이후 환자의 재활의지를 꺾는 ‘은유’와 투쟁을 벌이기 시작해 이듬해 이 책을 냈다. 그는 98년 또 한 차례 암으로 고통받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오랜 투병 생활 뒤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사형선고를 받고 나면, 당신은 태양도 죽음도 똑바로 쳐다보지 않으려 할 겁니다.
당신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차지요. 그러나 당신의 마음 속에는 끊임없이 강해지고 깊어지는 뭔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생명이라고 부른답니다.” 이재원 譯. 292쪽. 15,000원.
/문향숙기자 cult@simi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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