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의 미학

정치행정팀장 이영란

시민일보

| 2003-02-17 16:47:34

{ILINK:1} 대선이 끝난 직후 여야 모두의 정치개혁 행보가 특위 구성 2개월이 지나도록 구체적인 내용은커녕 계파와 세력간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개혁 작업이 갈등의 골만 키우고 있는 데는 기득권에 대한 미련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는 듯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당개혁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개혁드라이브 일정 앞에서는 다른 입장을 내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당 관계자들의 기득권 포기가 전제되지 않는 정치개혁논의는 분파만 우려될 뿐 당초의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것 같다.

개혁논의가 인적청산으로 번지는 가운데 분당 사태까지 예상되는 한나라당의 경우, 보수파인 김무성 의원 등이 개혁파인 안영근 의원을 불러내 멱살잡이를 하는 추태를 보인 바 있다. 보혁 대립이 극에 달하는 단적인 예다.

개혁파들은 ‘민정계의 수구보수파’를 향해 전면 퇴진하라며 ‘인적청산’을 요구하고 있고 보수파는 보수파대로 “한나라당의 색깔은 정해져 있다”며 “(개혁파들이) 다 자기 살길 찾자고 하는 거 아니냐”는 말로 불신을 내비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많이 참아왔지만 대선도 끝난 만큼 더 이상 같이 있을 필요가 없다”며 “나갈 사람은 나가고 당을 정리해야 할 시점이 된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발언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당의 경우라고 다르진 않다. 출발부터 신구주류의 갈등으로 복잡한 터에 개혁논의가 속 시원히 진행될 리 없다. 더구나 최근 개혁특위에서 지구당 위원장제도 폐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자 이번에는 신주류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구주류는 물론 일부 신주류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 제왕적 입지를 보장해주던 지구당 위원장 자리를 총선을 코앞에 둔 입장에서 선뜻 내줄 경우 선거운동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폐지 반대 이유다. 기득권만큼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이에 대한 여파인지 지난 14일 논의키로 했다가 불발된 이후 개혁안은 여태 통과를 위한 논의일정조차 없는 요원한 상태다.

문득 지난해 안방극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여인천하’라는 TV사극 장면이 떠오른다. 현재 정치판에서 난무하고 있는 이전투구가 당시 극 내용과 어찌 그리 비슷한지.

“선량님들, 버림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게 되는 평범한 진리를 진정 모르시나요”

기득권을 움켜쥐고 물러설 수 없다며 발버둥치는 사람들이나 얄팍한 권세에 모든 것을 걸고 이면도 체면도 없는 듯 행동하는 이들에게 ‘여인천하’를 강제시청 시킨다면 정치권 정화에 약간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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