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 기행

촛불 켜놓은 야시장 낭만적

시민일보

| 2003-03-03 18:21:16

호르가스가 어둠의 도시가 됐다.

오전 10시에 전기가 끊어진 후 14시간이 지난 자정까지 전기불이 들어 오질 않아 호텔은 물론 공공기관까지 촛불을 켜놓고 일을 보고 있다.

밤 23시에 전기가 들어올 것이라는 호텔 안내 여직원의 말이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언제 전기불이 들어올지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신강 지역을 내일 벗어난다고 하니 넓은 야시장에서 촛불켜놓고 저녁먹고 생맥주 한잔 하는 것도 운치 있어 버틸 만 했다.

아침저녁으로는 가을 같은 봄날이고 한 낯의 먼 산은 눈이 녹지 않아 그대로 남아 있는 4계절을 한 몸에 받으며 내일은 아침 일찍 카자흐스탄 알마타로 출발을 해야한다.

신강 지역의 10여개 도시를 기차 여행하면서 나중에 자료로 쓸 지도책과 현상해 모아놓은 사진도 10권으로 불어났다.

필름 1통에 36장의 사진이니 벌써 360장이 넘어간 셈이다.

여행하면서 가벼워야 할 베낭이 점점 늘어나는 사진으로 무거움이 더해가 불편함도 약간 있긴 했지만 하나하나 추억의 시간으로 넘길 수 있어 이런 무거움이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신강 지역의 리듬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정확히 20여일간 신강 지역을 여행한 셈인데 너무 짧은 시간이라 돌아보고 싶은 대자연속으로는 들어가질 못하고 신강 지역의 겉만 돌아보는 시늉만 한 것이 아닌지 부끄러워진다.

이번 여행의 부족한 점은 언제일지 모르지만 분명 신장 지역과 다시 만날 것임에 틀림없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아침저녁으로 창가에서 지저귀는 시끄러운 새소리 때문에 언제나 잠자리가 즐겁다. 서울에서는 돈주고도 살 수 없는 시간이다.

자정을 넘어 새벽 01시로 접어든다.

창문 밖에서 빨리 일어나라고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소리와 장단맞춰 불어주는 선선한 바람덕택에 베이징 시간으로 아침 08시에 모닝콜을 부탁해 놓은 것이 민망하게 새벽같이 일어나 배낭을 정리하고는 국경 마을에서 3박 4일간 머물면서 실컷 책도 읽고 잠도 실컷 잤던 호르가스를 떠났다.

호텔에서 국경 검문소까지는 1km가 조금 넘는 길이기에 충분히 걸어갈 수가 있었다.

버스가 도착하기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 기다리는데 머리카락이 전혀 없는 대머리 아저씨 한명의 아일랜드인과 오스트리아에서 온 남녀 한쌍도 같은 버스를 기다리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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