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숲속 아파트 밤마다‘모기와의 전쟁’

시민일보

| 2003-03-06 17:16:12

방 한개에 침대가 두개, 직접 요리를 해서 먹을 수 있는 부엌, 조그마한 거실, 샤워실까지 완비한 이 아파트는 중심지인 숨에서 채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자리잡고 있어 최상의 자리였다.

한가지 흠이 있다면 2~3개 방송밖에 나오질 않는 흑백 텔레비전이 옥의 티였지만 이 아파트에는 어쩌면 칼라 TV가 어울리지 않는 아주 오래된 서재와 책들 그리고 고물상에서나 볼 수 있는 레코드판들과는 흑백 텔레비전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2년 만에 만나는 라야와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내일이 중요한 시험이라 어쩔 수 없이 내일 만나기로 하고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라야가 그 동안 상당히 예뻐졌다.

올 봄 모스크바를 다녀온 이후 더욱 미인이 된 것 같은데 혹시 애인이 생겼는지 모른다.

지금부터 유라시아의 심장부이자 실크로드의 한복판에서 흥분되는 센츄럴 아시아 여행이 시작된다.

1층의 아파트가 나무숲에 둘러싸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웬 모기가 그리도 많은지 밤새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 때문에 몇 방 물리고 밤새 잠도 설쳤다.

중국 신강 지역에서는 눈 씻고 봐도 없었던 모기가 여기선 장사진을 이루었다.

알마타는 모든 것들이 낯익다.

웬만한 건물들과 주소 심지어는 나이트 클럽의 종류까지 알 수 있을 정도이며 무엇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을 만큼 알마타는 나에게 가까이 있었다.

오늘 하루 천천히 산책을 하듯 알마타를 돌아보았다.

낯익은 건물들 사이로 중국의 신강 지역처럼 변화의 몸부림을 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간혹 보이고 새로 생긴 쇼핑센터나 금발의 아가씨들이 앉아 차를 마시는 야외 카페나 레스토랑은 알마타를 여행 할 때마다 새로 생긴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손자 손녀들의 손을 잡고 책을 읽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은 언제 봐도 널찍한 공원의 별미에 속했다.

벤치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이들의 입술은 항시 촉촉이 젖어있고 본격적으로 여름에 접어드는 알마타를 걷고 있노라면 반라의 옷차림에 넋이나가 전봇대에 부딪칠 뻔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실크로드를 통한 하얀 겨울의 기차 여행도 만점이었지만 푸른 숲과 어우러진 모습 또한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부족하다.

이러한 매력에 이끌려 지난 5년 간 일년에 평균 두차례씩 지금까지 10여회 실크로드의 중심부 센츄럴 아시아를 여행했으니 나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 같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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