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규 화백 10주기 유작전

화폭에 담은‘순수 영혼’

시민일보

| 2003-03-11 17:16:15

이남규는 문학성과 조형성을 조화시킨 서정추상의 거봉이었으나 지방에서 활동한데다 화단의 주류에 있지 않았고, 말년의 10년 이상을 투병생활로 보낸 때문인지 일반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유려한 생동감과 따뜻한 색채로 특징지어지는 일반회화는 물론 서울 약현성당 등 전국의 주요 천주교회에 설치된 스테인드 글라스(유리화) 작품 등 종교미술에서도 독보적인 역할을 했다.

가나아트센터측은 “투병생활 동안 서정추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정에 도달한 작가였지만 사후 그에 대한 본격 조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이번 유작전은 잊혀진 거장을 다시 생각하고 재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유성 태생인 이남규는 공주사범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미술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다소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의 회화가 풍부한 문학적 서정을 바탕에 깔고 있음은 공주사범 시절에 국문학을 공부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대에서 장욱진으로부터 서양화를 배운 이남규는 하인두, 최종태 등과 깊이 교유했으며 장발 미술대학장의 소개로 오기선 신부를 만나면서 천주교에 입교했다.

그가 전국의 성당에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을 제작해주고 아내 조후종과 혼인한 것도 천주교와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남규는 스승인 장욱진의 회화에 빠져들었고, 반 고흐와 조르주 루오도 좋아했다.

그는 1960년대 후반 프랑스 파리로 유학한 뒤 루오의 가족을 만났는데, 이는 그가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에 손을 대는 계기가 됐다. 이어 알프레드 마네시에와 다진 친분은 다채로운 색채의 순수추상으로 가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처럼 유명 화가들의 뒤를 부지런히 밟아가던 그는 1980년대를 전후해 장욱진과 루오의 흔적을 차례로 자신의 예술에서 지워낸 다음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절친한 친구 최종태씨는 “1980년대 중반 무렵에 색채가 맑아지고 색조도 밝아지며 자신의 세계를 찾았다”면서 “그는 이전에 좋아했던 예술가들의 예술을 다 수용하면서 그것을 모두 극복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이남규는 1991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제7회 개인전을 앞두고 ‘이제 그림이 되는 것 같다’, ‘자유롭게 내 생각을 표현할 길이 보인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병환중이던 그는 전시 준비로 과로했던 때문인지 개막 일주일 가량을 남기고 쓰러진 뒤 타계하기까지 2년 동안 의식을 찾지 못해 가족과 미술계를 안타깝게 했다.

생전에 이남규는 그림 그리는 일에 대해 무엇을 덧붙여 만드는 일이 아니라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일이라고 갈파했다. 지우고 또 지워서 최종적으로 질서에 맞는 것만 남겨놓는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은 생명 그 자체를 노출시키는 것”이라고 압축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색채화가였으면서도 많은 색을 사용하지 않았다.

초록색과 검은색, 푸른색, 노랑색 등 서너 가지 색채 중심으로 영혼을 화면에 담아냈던 것이다.

임종을 앞두고서는 색조가 더욱 밝아지고 색면이 안정돼 삶과 죽음을 담담한 여유와 평온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번 유작전은 아내 조후종 여사의 정성어린 사후 내조에 힘입어 내실있게 성사됐다. 조씨는 “다 살지 못하고, 다 하지 못하고 떠나버린 것 같아 무엇인가 내가 더해주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조씨는 남편의 서간 등을 정리해 단행본으로 낼 예정이다. (문의(02)720-1020).
박정식 기자 pjs@simi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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