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위험하지만 짜릿한‘변두리 여행’

시민일보

| 2003-03-18 18:27:27

알마타에서 아크타우까지는 대략 3000km인데 세명의 아가씨 모두 아크타우까지 간다며 그제야 좀 자연스럽지 못했던 분위기가 바뀌더니 완전 한식구가 돼버렸다.

오전 일찍 라야와 함께 집을 나서는데 라야의 부모님이 계속해서 알마타를 벗어나면 위험하니 몸조심하라며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알마타로 돌아오라며 손수 담그신 된장과 딸기잼을 넣어주셨다.

라야의 부모님 말씀대로 알마타가 이런 정도인데 지방으로 내려가면 어떨지 상상이 가고도 남았지만 세상을 돌아보는 즐거움보다 더 큰 즐거움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구 소련의 중심지를 벗어나 지방으로 가면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언제 여행하더라도 부담스러운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3년전에 약 4개월의 실크로드 기차여행을 마치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끝에 알마타를 떠나기 이틀 전이었다.

이별의 파티를 마치고 새벽 02시경 카페에서 내가 머물던 숙소인 아파트까지 1km가 조금 넘는 곳이어서 밤 공기를 마시고 간다며 나왔다.

택시를 타고 가라는 것을 마다하고는 아파트까지 걸어가다가 그만 여권 검사를 하는 서너명의 군인들에게 구 소련제 따발총의 개머리판으로 뒤통수를 얻어맞고 기절해 지나가는 시민의 신고로 겨우 살아났던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추억으로 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하루만에 겨우 의식을 차려 한국 대사관의 노 영사와 알마타의 경찰청에서 긴급 여행 증명서를 발급 받아 서울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던 기억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과 중국 국경선에서 카자흐스탄의 국경 수비대원의 실수로 문제가 전혀 없었던 비자가 문제 많은 비자로 둔갑해 버려 사막한가운데 있는 간이 감옥에 갇혀 있다가 국경 수비대장의 사과로 풀려났던 일 하며 내전이 한창이었던 키르키스탄의 나른으로 가다가 배낭과 온몸을 벌집 쑤셔대듯 수색 당하고 돈 뺐기고 비슈케트로 쫓겨났던 일들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벅찬 추억들이 새삼스럽게 생각났다.

세명의 아가씨들은 포카판이 벌어졌고 몇칸넘어 10여명의 군인들은 통기타 페스티발이 벌어졌는데 외로운 초원 여행을 하게 됐나 싶었더니 외로움을 줄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서도 3명의 아가씨들은 잠잘 생각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자기네들은 기본이 새벽 03시나 되야 잠을 잔다면서 먼저 침대에 올라가 잠을 자라는데 그 다음이 가관이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같은 칸에 앉아서 여행을 하게되면 멋쩍어서 서로 먼 산만 바라보고 갈텐데 이 사람들은 금발의 러시아 아가씨나 할아버지든 군인이든 상관없이 언제나 자연스럽게 얘기하며 가는데 옷차림도 잠옷바람부터 시작해 옷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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