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플랫폼서 야채 사 기차안에서 요리
시민일보
| 2003-03-19 17:20:09
누워 기차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냄새인가 싶었더니 바로 루스끼의 냄새가 내몸에서 나는 것이었다.
하여튼 기분은 짱이다.
허기지게 기차여행을 하고있다.
언제나 그리워하던 기차여행이었기에 31시간째 끝없는 스텝지역과 고리타분하게 보이는 푸른 초원일수도 있는 기차 창 밖의 풍경들을 어느 것 하나 놓칠 것 없이 바라보고 있다.
구 소련의 기차여행에서 에어컨을 생각하는 것은 너무 사치스런 욕심이며 그 흔한 선풍기마저 있어주면 감사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나는 상황에 기차 안의 온도가 한낮에 34.9도까지 올라갔다.
아랄스크를 지나는 시간이 21시 30분 알마타시간이 23시 30분이다.
참조로 한국시간이 01시 30분이고 중국의 신장시간이 22시 30분이며 베이징시간이 24시 30분이니 머릿속에 다섯 지역의 시간대가 존재했다.
중국의 기차 안에서는 음료와 식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그런 것은 물론이거니와 카세트와 테이프, 잠옷과 각종 속옷· 의약품·설탕·소금·치즈·감자·수건·양말·샴푸·화장품 등등 시장에서 팔고있는 거의 모든 잡화들이 팔리고 있었다.
간이역을 제외한 일반역에 약 20분 정도 머물게 되는데 그러면 기차 안의 많은 사람들은 플랫폼에 내려 각종 과일과 채소를 사서는 기차 안에서 요리를 해 식사를 하는 모습이 우리에겐 낯설은 광경이겠지만 이 사람들이야 일상생활이니 카메라를 들이대는 내가 오히려 이상한 것이 당연할 것이었다.
21살의 갈색머리를 하고 있는 미모의 나타샤와 18살의 까작 아가씨인 수르샷 그리고 11학년에 해당하는 16살의 귀염둥이 아가씨인 나이스자와 한치의 어색함 없이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친언니 동생 같아 보일 만큼 너무 다정스러워 보였다.
말많고 먹어대기만 하는 중국의 기차 안의 모습과는 달리 좀 단조로울 것 같은 카자흐스탄의 기차 안은 까작스키의 꼭 성형수술을 한 것 같은 눈매와 말할 필요 없이 아름다운 러시아 아가씨들의 매혹적인 모습을 보며 기차여행을 하다보면 지루할 시간은커녕 3박 4일이 아니라 30박 40일도 거뜬히 견뎌낼수 있을 것 같았다
또다시 잠시 잊혀졌던 경찰관의 무례한 태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두 명의 경찰관이 기차안을 오가며 여권 검사를 하는데 차장이 일하는 업무실로 데려가서는 무엇 때문에 여행을 하느냐며 업무가 아닌데 이 먼 곳까지 무엇 때문에 가느냐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또 무슨 보고서가 그리 많은지 여권과 비자 그리고 오비르에 신고할 내용들을 아예 복사하듯이 베꼈다. 그것도 모자라 기차표에 적혀 있는 신상표가 여권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고는 여권을 내주는데 은근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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