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살리라
정치행정팀장 이영란
시민일보
| 2003-03-27 20:26:02
{ILINK:1} 지난 24일 천정배의원은 현역의원으로는 최초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지구당 위원장직을 전격 사퇴한 바 있다.
당시 천 의원은 “당개혁안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기 위해 소탐대실의 우를 엄중항의하는 뜻에서 기득권을 버리고 개혁에 앞장서고자 한다”는 사퇴의 변을 남겼다.
그리고 이틀 뒤인 26일, 민주당 개혁세력 의원들의 모임인 ‘바른정치모임’과 ‘열린개혁포럼’에서 천의원의 ‘사퇴결단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는 그 다음이 궁금했었다.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히 던지고 나설 다음 타자는 과연 누굴까 솔직히 기대도 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천의원의 결단을 지지한다는 ‘말’만 무성할뿐 지구당위원장직을 박차고 나선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성명서 발표로 인해 오해라도 받을까 싶어 그랬는지 ‘천의원을 제외하고는 지구당위원장직을 사퇴하는 일은 없다’고 못박아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당내 개혁논의 과정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개혁그룹 의원들이 말이다.
‘기득권 포기’라는 복병 앞에서 자존을 잃고 힘없이 무너지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심정이 착잡하다. 정치가 뭐 길래 우리나라의 최고 엘리트 집단의 자존을 저리도 무참히 일그러뜨리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개혁논리와 기득권 포기문제는 별개라는 이들 개혁그룹의 변은 얼핏 들으면 그럴 듯 하다. 천의원의 지구당위원장직 사퇴는 당개혁특위 간사로서 개혁안 후퇴에 대한 항의표시이기 때문에 그의 결정과 사퇴동참 문제는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미사여구로 둘러대도 ‘지구당위원장의 달콤한 기득권은 결코 놓고 싶지 않다’는 이들의 속내는 감춰지지 않는다. 섣불리 앞장서 나섰다가 자칫 ‘횡액’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약은 속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민주당 개혁논의는 이번 주 안으로 끝마무리 될 것 같다. 말로만 외치는 낡은 정치 청산, 환골탈태 구호는 그저 공허할 뿐이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개혁안을 아무리 외친다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대선 이후 지속돼온 개혁논의를 수개월이 지나도록 표류하게 만든 주범은 다름 아닌 이들 기득권 세력이다.
이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재는 전자저울의 눈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정치개혁이라는 ‘숙제마무리’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지구당위원장직 폐지를 말하면서도 자리에 연연해 하는, 작은 틀에 갇혀 소신보다는 뒤통수에 쏟아지는 뜨거운 눈총 감당 쪽을 택하고 나선 이들에게 더 이상 기대할 무엇이 있을까.
정치는 툭하면 떼 지어 성명서나 발표하면서 어줍잖은 말장난이나 보태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제 남의 ‘살신성인’을 치하하는 정치인보다 스스로 ‘살신성인’을 실천하는 정치인을 갖고 싶다. 정치인의 진정한 자존심이 아쉬운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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