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가네코 후미코

일본제국 아나키스트 죽음 둘러싼 미스터리

시민일보

| 2003-03-27 20:31:09

가네코 후미코는 누구이며, 왜 자살했을까? 이 두 가지 궁금증 가운데 적어도 후자는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가네코의 일생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는 일본 역사학자 야마다 쇼지(64)에 따르면 여태껏 이 사건과 관련된 자료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소문만 무성하다.

조선일보 논설고문 이규태씨는 당시 가네코의 자살을 둘러싸고 무성하게 일던 소문 가운데 임신설을 소개하고 있다. 즉, 가네코가 옥중 임신한 것이 외형으로 드러났고,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 것을 두려워한 당국이 낙태수술을 하다가 치사한 것을 자살로 위장했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의 진위 여부야 차치하고라도, 옥중 임신 운운은 무엇이며, 정말로 임신을 했다면 상대 남자는 누구인가?
이러한 물음이 봉착하는 곳에서 가네코는 식민지 조선과 접점을 이룬다.

한국 독립운동사, 특히 아나키즘 운동사에서 박열이란 이름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전쟁 때 납북돼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회장을 지냈다고 하며 1974년 1월 17일 북한에서 사망했음이 확인되는 인물이다.

가네코보다 한 살 많은(1902년 2월 12일 경북 문경군 마성면 오천리 출생) 그는 1916년 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입학했으며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이 해에 도쿄(東京)로 건너가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조선인 유학생들과 함께 아나키즘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친일파에 대한 테러활동도 전개했다.

가네코가 박열을 만난 것은 1922년 초였다. 당시 오뎅집 점원으로 일하던 가네코는 박열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 아나키즘 운동의 동지가 됐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둘은 셋방을 얻어 동거에 들어간다.


그러던 중 1923년 9월 1일 간토(關東)대지진이 발생한다. 천재지변임이 분명한 이 사건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엉뚱하게 조선인 대학살의 빌미가 됐다. 혼란을 틈탄 조선인들이 샘물에 독약을 풀어 일본인을 죽이려 한다는 소문이 어느새 기정사실화됨으로써 조선인 대량학살 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 와중에 박열과 가네코는 천황을 암살하려 했다는 대역죄로 검거되고 재판에 회부돼 1926년 3월 25일 둘 다 사형이 언도됐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열흘 뒤인 4월 5일 둘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수감생활 중 박열과 가네코는 옥중 결혼을 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자살 사건과 맞물려 옥중 임신설이 나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일본 릿교(立敎)대 교수를 지낸 야마다 쇼지는 ‘가네코 후미코 :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제국의 아나키스트’(산처럼刊)에서 죽음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가네코의 일생을 통해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폭로, 고발하려 한다.

아버지에게서 버림받고 가난에 찌들린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식민지 조선(김천)에서 살고 있던 고모를 찾아가 6년 동안 조선생활을 경험한 가네코. 하지만 조선에서도 안식처를 찾지 못한 가네코는 일본으로 돌아와 신문을 팔거나 오뎅집 일을 하며 힘들고 억눌린 생활을 하다가 박열과 아나키즘을 만났다.

야마다는 이러한 불행을 통해 가네코가 식민지 조선인의 고통을 자기 처지처럼 이해하게 됐으며, ‘대일본제국 국민’이었음에도 여기에 편입되지 못한 자기 삶을 한탄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진단하고 있다. 정선태 옮김. 504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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