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성찰’담은 명칼럼
해인사를 거닐다
시민일보
| 2003-03-31 18:50:55
해인사가 펴내는 대중 불교잡지 ‘월간 해인(海印)’의 칼럼 ‘유마의 방’에 실린 글 중 24편이 선별돼 ‘해인사를 거닐다’(옹기장이 刊)로 출간됐다.
‘유마’(維摩)는 대승경전인 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으로, 석가모니 당대 교단에 진보의 바람을 일으킨 재가신도. ‘유마’가 칼럼 제목으로 쓰인 것은 유마와 같은 ‘속인’(俗人)들의 경책문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윤기·리영희·노무현·김 훈 등 22명의 산문 24편은 경책류의 글이라기보다 세상의 속도에 편승해 질주해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는 관조와 성찰을 담고 있어 오히려 잔잔하게 다가온다.
“하나의 토기가 태어날 때 그것들은 물과 불과 흙과 공기의 모든 원소들을 그 안에 저장하고 있다.
토기가 쏟아져 나올 때 그것들은 얼마나 많은 말들을 참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인간의 언어로 쓰여지는 나의 글은 그 여정에서 보여지는 저 은밀한 이야기들을 따라 잡지 못한다”(김 훈, 작가)
“고백합니다. 나는, 지극한 진리는 말로써 전할 수 없다(不立文字)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나는 언어로써 그것을 그려내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나는 이 착각의 늪에 빠져 한동안 허우적거렸습니다”(이윤기, 작가)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게 인생을 제법 치열하게 살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늘 가슴 속에 남는 의문이 있다. 나는 과연 인생을 후회 없이 살고 있는가. ‘너는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인간이었다’고 할 수 있는가”(노무현, 대통령)
“책 읽다 명상하고 나면 일어나서 변소를 닦았다. 대한민국 형무소의 감방 변소는 그 속에 살아 본 경험이 없는 이에게는 설명해도 짐작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 공간과 표면 어느 점에 남은 때나 티끌은 바로 나의 마음의 때로 인해서 보이지 않았다는 진리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리영희, 학자)
“그렇게 휴가가 흘러가고 있을 때 가장 낮고 혼탁한 곳에 핀 연꽃이 홀연히 내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내 발 밑에 온몸을 던져 절이라도 하듯 조아리고 있었습니다. 경건하고 간절해지는 길은 몸을 낮추고 자리를 낮추는 것이라고 속삭이면서 말입니다”(곽병찬,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232쪽.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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