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한 ‘춤’
춤 제럴드 조너스 지음/ 청년사 刊
시민일보
| 2003-04-07 18:08:03
신간 ‘춤’(청년사刊)은 춤의 개인적, 문화적,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분석한 인문교양서다.
이 때문에 이 책의 관심은 비단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로서의 춤에 그치지 않는다.
18세기 말 처음 타히티 섬에 도착한 영국인들은 원주민의 춤을 보고 ‘상스럽다’고 생각했다.
젖가슴을 드러낸 채 나무껍질 치마를 입고 빠르게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그들의 춤은 저속해 보였다.
뒤이어 도착한 선교사들은 이를 성적 방종으로 간주, 아예 춤을 금지했다. 그러나 실제 이 춤은 신을 기쁘게 하거나 공동작업이 계획대로 마무리된 것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19세기 보호구역에 격리된 인디언들을 집결시킨 것은 춤이었다.
한 인디언 지도자의 예언을 따라 적대관계에 있던 부족들이 모여 ‘유령의 춤‘이라는 의식을 치렀다. 며칠이고 무아지경에서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추는 의식이다. 물론 이에 놀란 미국 정부는 총으로 이들을 학살했다.
‘춤‘은 이처럼 춤을 예술 이상의 것으로 보고 접근한 책이다. 그래서 춤 비평보다는 춤 인류학에 가깝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춤을 대상으로 춤에 담긴 의미와 문화사회적 기능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이 책은 춤의 기능을 모두 8개로 범주화했다. △문화적 정체성의 표상으로서의 춤 △종교적 숭배의 표현으로서의 춤 △사회 질서와 권력의 표현으로서의 춤 △문화적 관습의 표현으로서의 춤 △고전 예술로서의 춤 △문화들이 혼성되는 매체로서의 춤 △개인 예술가들의 창조물로서의 춤 △오늘날의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알리는 지표로서의 춤 등이 그것이다.
이 과정에 사례로 등장하는 춤은 다양하다. 서양의 발레는 물론 유대인의 혼례춤, 일본의 가부키, 아프리카 왕실춤, 인도의 카타칼리, 인도네시아의 베다야, 미국 흑인 노예들의 춤, 남미의 리우축제 춤, 사교춤 등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 1978년 출판을 기획해 92년 출간되기까지 무려 14년이 걸린 점이나 학자, 무용가, 무용 연구자, 디자이너 등 100여명 이상이 이 과정에 참여했다는 점은 이 책이 꼼꼼하게 준비된 노작임을 짐작케 한다.
또 책 뿐만아니라 방송 다큐멘터리도 동시에 만들어졌다. 미국 공영TV채널인 채널13 WNET가 8부작 동명 프로그램을 제작, 방영했다. 책의 저자는 다큐멘터리 제작자 제럴드 조너스. 이 책은 서구 편향에서 벗어나 방대한 전세계의 춤을 조사하고 이를 범주화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지만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가 ‘옮긴이의 글’에서 밝히듯 서구 중심주의를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하고 있다.
원제는 Dancing-The Pleasure, Power and Art of Movement. 272쪽. 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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