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더위로 말라버린 도시 ‘키질로즈다’

시민일보

| 2003-04-08 18:23:07

아주 약간의 미안함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열두시간째 한낮동안 먹고 자고 또 먹고 자고 도대체 짐승으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그저 돼지새끼처럼 먹기만 하는데 위쪽 칸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내가 울화통이 치밀어 오를 판이었다.

기차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인종들을 만났지만 오늘처럼 예의 없는 까작인은 5년 만에 처음 만났다.

환자처럼 누워만 있는 이들 덕택에 오랜만에 아주 조용한 기차여행을 했으니 이들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할 판이었다.

이런 와중에 한 가지 재미있는 모습이 나의 분위기를 반전시켜주었다. 결혼식을 막 끝낸 신랑, 신부가 신랑집으로 가기 위해서 기차를 탄 이들이 목적지에 도착하자 플랫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중 나와 피리와 기타를 치면서 신랑 신부를 맞이하였고 스물다섯칸의 기차 안에 있는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아가라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열만 받지 말고 식혔다 가라는 뜻인 듯 했다.

파삭파삭하게 말라버린 빵 조각처럼 끝없이 펼쳐진 스텝지역에 낙타와 말, 염소, 양 그리고 소들만이 초원을 산책하고 있다. 주인 없는 동물들의 세상이다. 카자흐스탄이 버린 땅 키질로즈다에 도착을 했다.

1200km에서 1300km를 28시간 동안 달려 오후 14시에 도착한 키질로즈다는 완전히 죽어있는 듯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콱콱 막혀왔다. 우랄강이 흐르는 아트라우나 카스피해의 아크타우는 그나마 버틸 수 있었건만 카자흐스탄의 중심부에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기차역에서 시내까지 들어가는 동안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정체된 듯한 부스스한 건물들은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곧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서도 오비르 신고를 해야하기에 만만한 경찰관한테 물어보니 대답이 제각기 틀렸다.

어떤 이는 오비르에 신고를 해야한다고 말하고 다른 이는 그럴 필요가 없다하고 이럴 땐 번거롭지만 안전하게 신고하는 것이 장땡이다 싶어 물어 물어 오비르를 찾아가 “키질로즈다에 왔소이다”라고 신고를 하니 내 여권을 훑어본 경찰관은 번거롭다는 식으로 3일 이상 머물 거라면 다시 오라는 말투였다.

여기 경찰관들도 모두 더위 먹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23달러 방치고는 꽤 넓었다.

다섯평은 되어 보이는 방에는 서너명이 한꺼번에 샤워를 할 수 있을 만큼 넉넉했고 보기에만 멀쩡한 한국산 LG텔레비전이 멋으로 장식했고 대문짝만한 소파와 침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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