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45세 할머니’ 여행봉사 못잊어

시민일보

| 2003-04-09 17:37:13

물론 여기에서도 텔레비전은 나오질 않았지만 기특하게도 모든 방들이 시원한 창문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키질로즈다의 제일 큰 서점에 들러 지도를 구하러 왔다고 하자 매혹적인 여직원 아가씨 고개만 좌우로 흔들 뿐 말이 없었다.

그런데 옆에서 내 말을 듣던 할머니 한 분이 키질로즈다의 지도를 파는 곳이 없다며 내 노트에다가 직접 키질로즈다의 지도를 그려주고는 내가 좋다면 키질로즈다를 안내해 주겠다면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지 3개월 밖에 되지를 않아 언어 소통이 좀 불편은 하지만 꼭 안내를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 보는 나에게 무엇 하러 그러느냐고 하니까 아무이유 없이 그냥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지 돈을 바란다거나 그 밖의 어떤 것도 필요 없다는데 하도 미안해 그럼 근사한 점심이라도 사주겠다니 비싼 곳 갈 필요 없이 간단하게 바자르에서 먹고 돌아보자는 이 할머니는 벌써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키질로즈다의 시내는 나중에 돌아봐도 늦지 않으니 해가 떨어지면 돌아보기 어려운 외곽지역으로 나가자면서 도무지 믿기 어려울 만큼의 싼값으로 택시를 렌트까지 했다.

자그마치 3시간 동안 자가용 택시를 타고 돌아다니는데 350뎅가 미화 2달러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미안할 정도의 싼값에 흥정을 했다.

돌아볼 곳을 돌아본 이 할머니는 까작인의 전통 집까지 들어가 한국에서 온 여행자가 이 집을 구경하고 싶다며 거의 일방적으로 말을 하고는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 안에는 여섯명이나 되는 남자아이들이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토록 나를 위해 적극적으로 키질로즈다를 안내해준 이 할머니는 알고 보니 45세 밖에 안되는 아주머니였다.

세명의 딸을 둔 이 아주머니는 첫딸이 결혼을 해서 손녀딸을 가졌으니 어쨌든 할머니는 할머니였지만 누가 봐도 좀 심했다는 생각이었다.

모든 이빨을 금이빨로 장식을 하였고 주름이 깊게 파인 전형적인 까작인인 이 할머니의 성함은 나디차였다.

오후 15시부터 20시까지 나를 위해 귀중한 시간을 투자해서 이 할머니는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또다시 키질로즈다를 여행하게 되거든 다시 만나자며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거든 소식 전해달라며 달랑 이메일 주소 하나만 일러 주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키질로즈다에서도 힘센 놈이 왕이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서부쪽의 카스피해에서 생산된 가스와 석유의 중간지점으로 활용할 계획으로 키질로즈다를 선택한 다국적 석유 기업들은 그나마 남아있던 노른자 땅을 싹쓸이 해 앞으로 3-4년 뒤에 개발할 계획을 갖고 그 땅위에 벌써 직원들이 사용하는 그림 같은 집들을 지어놓고 앞날의 노다지를 캐기 위해 이빨을 갈고 있었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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