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녹초가 되버린 13시간 ‘버스 여행’
시민일보
| 2003-04-15 17:58:02
여름방학을 맞이해 엄마인 로자와 함께 작은 이모가 있는 제즈가즈한에서 한달 동안 머물 예정으로 가는 중인데 엄마인 로자도 상당히 세련되었고 리마라 또한 보기 드문 까작아가씨 이었다.
우윳빛 같은 피부에 아주 새까만 머릿결 거기에다 미소짓는 입술은 13시간 동안 나를 꼼짝 못하게 했다.
두 명이 앉아도 좁은 의자에 엄마인 로자와 함께 겨울도 아닌 여름에 포갤 대로 포갠 엉덩이를 맞대고 왔으니 팔다리가 쥐가 나도 견딜 수 있었다.
중간에 쉬어 가는 카페에서는 리마라가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온 것들을 나눠먹으면서 오는데 엄마인 로자만 없었다면 제즈가즈한에서 데이트 신청을 했을 텐데 엄격해 보이는 엄마 때문에 군침만 삼켜야 했다.
키질로즈다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한 고물버스는 하루종일 달려서 21시에 제즈가즈한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임대 놓는 아파트에서부터 시작해 싸구려 호텔을 뒤지고 다녔는데도 방이 있는데도 없다고 하는 건지 진짜 없는 건지 대문이나 호텔 입구에서부터 쓰러질 듯한 문짝이 말해주듯 안내인은 무조건 고개만 설레설레 흔드는데 거참 신기한 노릇이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반겨준 곳은 삼성이 운영하는 삼성 고스띠니쪄였다.
제즈가즈한의 금광을 캐느라 정신 없는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호텔로 모든 시설들이 나무랄 데 없었으며 그다지 비싸지 않은 2500뎅가의 방이었지만 시설은 상당히 훌륭했다.
더군다나 공짜 하나 없는 호텔에서 냉장고 코드가 꽂혀있는 것도 신기한 판에 그 안에는 자그마치 2ℓ짜리 시원한 생수 한 병이 있었으니 얼마나 감개무량했던지. 구 소비에트 주택들이 즐비한 마을을 바라보며 개구리 뒷다리 빠듯이 녹초가 되버린 몸으로 샤워를 하는데 몸이 빡빡해지는 기분이었다.
13시간을 버스를 타고 오면서 지워지지 않는 생각이 나를 붙들고 있었다. 2인 의자에 불편해 보이는 아빠를 앉히고 그 옆에 자리잡은 아줌마의 사이에 언니의 무릎 위에는 두 세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남동생을 앉히고는 아빠의 가랑이 사이에 서서 아빠와 언니남동생을 돌보며 꼬박 서서 반나절을 가는데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예쁜 웃음까지 지으며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나이가 많아봐야 겨우 초등학교 1학년도 안되어 보였다.
아빠의 시중을 들며 남동생 콧물 닦아주며 중간 중간에 가족들이 먹을 음식까지 그렇게도 어린 소녀가 어떻게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 와중에 사진을 찍으려고 사진기를 꺼내들었다가 그 어린 소녀의 동그란 눈과 마주치는 순간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그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 소녀와 가족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 건지 혼돈에 빠진 내 머릿속은 현기증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