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신록 우거진 생기넘치는 도시
시민일보
| 2003-04-16 17:39:54
서부 유럽 만한 카자흐스탄 지도를 펴놓고 보면 동서남북 가운데 위치한 도시가 제즈가즈한이다.
키질로즈다에서 제즈가즈한까지의 교통편은 비행기는커녕 기차도 없으며 오로지 낡은버스를타고 가야만 하는 말 그대로 버려진 지역에 자리잡은 두 지역이 너무도 다른 야누스와 같은 얼굴을 띠고 있었다.
자정부터 새벽 06시까지는 완전 단수하고 대낮에는 2시간씩 물을 틀어주고 1시간씩 단수하며 한낮의 사람들은 모두 집안에 쥐죽은 듯 있고 징그러운 벌레들과 남자 사냥을 하는 금발의 전사들이 득실거리는 밤거리가 키질로즈다의 느낌이라면 이른 아침부터 해야 할 일이 기다리는 듯 활기차고 경쾌하게 보이는 발걸음과 동부와 마찬가지로 제즈가즈한의 또 다른 모습은 온통 나무밖에 보이질 않았다.
공원은 말할 것도 없고 구 소비에트 가옥이나 신흥주택이나 하나같이 나무그늘에 가려 집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아마 녹지율이 80%이상은 되어 보였다. 온 도시가 나무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숲속 마을에서 살아가는 제즈가즈한의 시민들은 얼마만큼 행복할까! 그런데 서울의 녹지율은 얼마지?”
어쨌든 제멋대로 삐죽삐죽 뻗은 머리를 손질할 겸 미장원을 찾았는데 낡고 초라한 겉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상당히 고급스런 시설을 갖추어 놓았다.
내 머리손질을 해주는 러시안 아줌마의 피부는 하얗다 못해 눈이 시릴 정도라 선글라스를 써야 할 판이었지만 그러면 푸른 눈을 볼 수 없으니 이럴 경우를 진퇴양난이라고 표현해도 맞는지 모르겠다.
러시아 사람들의 손재주는 참으로 기특한데 러시안 아줌마의 손놀림 또한 나를 만족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세히 뜯어보니 얼굴이 검게 탄 것이 아니고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스킨과 로션을 발라도 물과 비누가 맞지 않아 그런 것이겠지 하고 대충 넘어갔는데 미장원의 거울 앞에 보이는 얼굴이 내 얼굴이 아니었다.
거북이 등처럼 피부가 쫙쫙 갈라져 있었다.
보통 영상 48도 정도이지만 가끔 50도가 넘어가는 사막 지역을 여행하면서 카스피해에서 날아갈듯이 수영을 하고는 모랫바닥에 드러누웠는데 그만 잠깐 졸았던 것이 화근이 된 것 같았다.
팔과 등짝은 말할 것도 없고 수영복을 입은 중요한 부분만 빼고는 시뻘건 피부가 가라앉기도 전에 배낭을 메고 다녔으니 여기저기 벗겨지고 따갑고 말이 아니었다.
키질로즈다의 바자르에서 점심을 먹으며 얘기했던 아줌마는 영상 40도에 사람이 더위에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를 들을 때면 자기네들은 웃음밖에 나오질 않는다고 했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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