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모스크바행 열차타고 ‘초원 횡단’
시민일보
| 2003-04-17 18:43:49
40도는 기본이고 50도가 넘는 더위가 허다한데 돌아보기 바빠 피부관리 못했기에 지금의 내 얼굴은 쿤타킨테와 같은 얼굴이 되어버렸다.
원상복귀 하려면 시간 꽤나 걸리겠다.
나는 지금 제즈가즈한 출발 모스크바행 열차에 몸을 싣고있다.
이 열차도 국경선을 넘어 3박 4일간 3000km 이상을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북적거렸던 열차와는 달리 4인승 쿠페에 침대 하나가 여유가 있을 만큼 넉넉했고 까작인들은 거의 보이질 않았고 그 자리를 러시안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내 옆 침대에는 몸이 불편한 73세의 뚱뚱한 러시아 할머니가 구 소련이 해체되고 각 공화국으로 분리 독립하면서 각 공화국에 살아가는 1200만명의 러시아 사람들이 이제는 소수민족으로 전락해서 차별을 받게되었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또 옛 소련시절에는 물가나 주택걱정은 전혀 없었는데 지금은 계속 오르는 물가 때문에 살기가 너무 어렵게 되었다며 몇 시간째 쉬지 않고 말을 하고 있고 내 바로 윗 침대칸에는 모스크바 음악대학에서 2년째 지휘 공부를 하고있는 동양적인 금발의 18세 아가씨 나이스자가 누워있다.
단발머리의 스타일에 시력-0.5라는 나이스자는 겉모습의 하얀 피부와 머리결만 빼놓으면 수줍게 웃는 미소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조용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한국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방학이라 제즈가즈한에 있는 집에 들러 부모님을 만나 인사드리고 음악 공부를 쉴 수 없어 아스타나에 있는 친척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열차가 북동쪽으로 움직이니 사막과 스텝지역 대신 이제는 말 그대로의 푸른 초원이 펼쳐지기 시작했고 커다란 나무들이 기찻길 주변에서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중간에 나타나는 호수위에는 오리떼들이 무리를 지어 수영을 하고있고 주변을 말과 소, 양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불어오는 바람도 풀 냄새, 나무냄새가 물씬물씬 풍기니 카라간다까지는 15시간 아스타나까지는 20시간 동안 기차여행을 하는 것이 즐거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넓지 막한 주택에는 각종 꽂들과 채소들이 가득차 있고 하루종일 뛰어 다녀도 지칠 것 같지 않은 초원에서 놀고있는 아이들은 메말라 가는 서부지역과는 너무도 불평등했다.
해가 떨어지고 호수 위에 비치는 반달을 벗삼아 나이스자와 함께 다정스럽게 이야기하다 보면 새벽이 우릴 반길 것이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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