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부르는 가정폭력

이 영 란 정치행정팀장

시민일보

| 2003-05-21 18:45:31

{ILINK:1} “스스로 창피하기도 하지만 가족들이 알면 내가 맞고 사는 것으로 인해 고통받을까봐 차마 말을 못해요. 또 `맞았다’고 하면 지레 `여자가 맞을 짓을 했겠지’하고 생각하는 주변의 눈총 때문에도 입을 다물게 되지요”

피해 아내의 자조석인 탄식이 아니더라도 날로 심각해져 가는 가정폭력 실태는 비단 어제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하는 우리 모두의 현안거리다.

여성부 집계를 보면,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전국 가정폭력상담소에 접수된 가정폭력 상담건수는 99년 4만1497건에서 2000년 7만5723건, 2001년 11만4612건 등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21일 50대 아내가 딸들과 함께 만취한 남편을 질식시켜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딸들과 아내가 합세해 아버지와 남편인 가장을 죽이다니 자칫 비난받아 마땅한 패륜으로 몰릴 수도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가해자의 살인행위 뒤에는 수십년간 술만 마시면 아내를 때리고 행패를 부려온 폭력남편의 광폭한 행패에 시달리던 피해자의 참혹한 실상이 있었다.

이럴 경우 과연 누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이에 앞서 발생된 바 있는 30대 아들이 아버지를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로 때려 살해한 사건 역시 수십 년에 걸친 가장의 폭력을 무기력하게 당해온 아들의 반란이 불러온 참화였다.

아들의 방망이에 목숨을 잃은 그 아버지는 30여년간 자신의 아내는 물론 자녀와 주변사람들에게까지 폭행을 비롯한 인면수심 행위를 일삼던 범죄자였다.

피해당사자의 이같은 이전 행적에 비춰봤을 때 여성단체들이 나서 존속살인을 저지른 아들에게 내려진 7년 실형을 무산시키고 여론 역시 이에 동조한 것은 무리가 아니다.


가정폭력 중에서도 아내에 대한 폭력은 가족해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며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도 장기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결과로 볼 때 ‘매맞는 여성’의 문제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최근 들어 가족간 살해사건이 빈번하게 발생되는 이유는 어쩌면 오랫동안 폭력을 당해왔던 피해자들의 인내와 자제력이 한계에 이르러 그들의 무기력함을 일깨웠기 때문 아닐까.

가족붕괴를 불러오는 가정폭력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되겠다.

서울시가 가정폭력에 대한 재정을 지원하고 지원대상 여성 보호시설을 늘리고 있다.

경찰청 역시 가정폭력사건에 대해 능동적으로 피해자 인권보호를 위해 `가정폭력상담관’을 지정 운영하겠다니 뒤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다.

더불어 폭력피해 당사자의 소극적인 자세가 폭력 허용을 부채질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피해자 측에서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는 모습도 가정폭력을 근절하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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