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영화

변사의 추억… ‘2003 아리랑’

시민일보

| 2003-06-04 17:31:00

줄거리는 20년대 나운규의 ‘아리랑’의 스토리라고 전해 내려오는 것(나운규의 ‘아리랑’은 필름이나 시나리오 모두 전해지지 않고 있다)과 다르지 않다.

시골 소작농의 아들로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영진(노익현)은 ‘일제’에게 받은 고문으로 정신병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에는 영진을 사모하는 명순(조미정)과 또 다른 유학생 현구(이필모)를 마음에 두고 있는 여동생 영희(황신정), 그리고 일제 앞잡이 기호(최대원)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아버지가 살고 있다.

기호는 영진을 괴롭히며 호시탐탐 영희를 노리던 차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온 현구를 만나게 된다. 엘리트 현구와 영희의 정다운 모습을 보고 질투를 억누르지 못하는 기호.

풍년을 축하하는 마을 잔치가 열리던 어느날, 기호는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 영희를 찾아가 겁탈을 시도하고 이 모습을 목격한 영진은 ‘놓았던 정신’을 다시 ‘붙잡게’ 되는데…

모두들 알고 있는 스토리에 관객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신인급의 배우진, 변사가 등장하고 흑백이 주를 이루는 무성영화의 스타일까지 자칫하면 무모한 도전 혹은 과거의 복원에만 머무를 뻔한 영화를 살려내는 것은 이두용 감독의 연출력이다.

해외영화제에서 호평 받았던 ‘물레야 물레야’, ‘피막’외에 ‘돌아이’시리즈나 ‘뽕’같은 상업영화로도 인기를 모았던 이 ‘백전노장’은 강약을 조절해가며 매끄러우면서도 지루함 없이 줄거리를 몰고 간다.


변사의 멘트는 그 시대의 구수한 말투를 살리면서도 현대의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줄 정도로 예스럽지는 않은 편. 당시 영화의 질감을 살리려고 1초당 18프레임씩 집어넣은 화면이나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도 무성영화의 틀에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 뿐 부담스럽지 않다.

다만 나운규의 영화보다는 어버이날 단골 악극 정도로만 익숙해져있는 ‘아리랑’이 얼마만큼 주 관객층인 젊은 영화팬들에게 먹혀들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10월 북한시사회에 이어 남북한 동시개봉을 추진하고 있어 본격적인 남북 영화 교류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시오리 엔터테인먼트의 창립작으로 13억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어졌다.

상영시간 83분. 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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